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김철수 前상공부 장관이 말하는 '한국 통상 뒷이야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70년대 섬유 쿼터 협상 안 풀리자
美 대표가 "카드 게임으로 가리자" 제안
"슈퍼 301조 우선 협상국 됐을 때 美보다 국내 부처 설득이 더 힘겨웠다" 고백

40년 통상 스토리 책으로 엮어
생애 첫 기록문집 '통상을 넘어 번영으로 : 경제 발전과 한국의 통상' 출간
김철수 전 상공자원부 장관

김철수 전 상공자원부 장관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그가 상공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과장 3~4년차 때였다. 미국과 섬유 쿼터제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당시 섬유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대표 효자 업종이었다. 미국은 보호무역을 펼쳤고, 섬유 산업은 그 중심에 있었다. 양국의 국민적 관심도 대단했다. 미국은 전년과 같은 양을 수입하겠다고 나섰고 우리는 수출을 6% 늘려달라고 맞섰다.

특히 수출 단가가 가장 높은 신사복이 쟁점이었다. 한 치 양보 없는 줄다리기가 계속 되면서 협상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미국 측에서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카드 게임'으로 승부를 가리자는 것. 양국 협상 대표가 아닌 '카드' 대표가 테이블에서 포커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당시 국장이 나섰는데 결국 미국에 져 쿼터 1%를 늘리는 데 만족해야 했다. 다른 나라는 1%도 언감생심일 때다.

김철수(73ㆍ사진) 전 상공자원부 장관이 과장으로 근무하던 1976~1977년 이야기다. 그는 지난 4일 아시아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오래 전 통상 협상의 여러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마침 이날은 김 전 장관이 생애 최초로 집필한 '통상을 넘어 번영으로 : 경제 발전과 한국의 통상'을 출간한 날이었다. 이 책은 한국이 세계 8위의 주요 통상 국가로 성장하는 길목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통상 이슈를 담은 생생한 기록문이다. 1973년 상공부 과장 특채로 공직에 입문한 그는 통상에서 전문성을 쌓으면서 딱 20년 만에 장관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김 전 장관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 과정에서 통상의 주요 이슈가 많이 바뀐 게 사실"이라며 1970년대부터 앞으로 나아가야 할 우리 통상에 대한 큰 줄기를 단숨에 설명했다.

그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는 보호 무역주의가 심해 섬유ㆍ신발ㆍ컬러TVㆍ철강 등 우리 주요 수출품의 해외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고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 1990년대 초까지는 우리나라가 중견 무역국으로 부상하면서 오히려 선진국으로부터 시장 개방 압력을 많이 받은 탓에 이를 지켜내는 것이 또 중요한 이슈였다"고 설명했다.

그가 상공부 장관으로 재임할 당시에는 다자간 무역 협상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김 전 장관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고 우리나라의 모든 통상 문제는 다자간 이슈를 통해 이뤄졌다"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자유무역협정(FTA)이 통상 정책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수 전 상공자원부 장관

김철수 전 상공자원부 장관

원본보기 아이콘

통상과 첫 인연을 맺고선 40여년이 흘렀지만 그에게 잊을 수 없는 협상은 크게 두 가지다. 김 전 장관은 "첫 번째는 1989년 미국과 슈퍼 301조 우선 협상국 지정 협상인데, 미국에게 우리가 불공정 무역국이 아니라는 것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지만 농산물 시장 개방 등에 있어 국내의 다른 부처를 설득하는 것이 오히려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두 번째로 '매국노' 소리까지 들어야 했던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꼽았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는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통상'은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 정리돼 있다. 현 정부의 FTA 추진 전략에 대해 묻자, 그는 "동시다발적인 FTA 추진은 우리나라가 처한 환경에서 봤을 때 옳은 방향"이라며 "다자간 무역 협상이 더딘 상황에선 FTA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것이 우리나라 무역 증진을 위해선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이슈에 대해서는 "참여 희망 시점이 조금 늦었다고 생각한다"며 "기존 회원국과 협상을 마무리 짓기 전에 참여해 우리도 협상문의 최종 형태에 기여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전했다. 그는 다만 "이미 (TPP에 참여한) 많은 회원국과 FTA가 맺어져 있기 때문에 추가 협상을 통해 좋은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고 격려했다.

한ㆍ중 FTA 협상에 대해서는 "중요한 것은 규범 협상"이라며 "중국이 세계적인 규범에 도달하도록 유도하는 합의를 많이 도출하면 한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중국은 그에게 있어서도 남 다른 추억이 있는 나라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차장으로 일할 당시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중국을 WTO 가입국으로 만드는 일이었던 것. 김 전 장관은 "1995년부터 1999년까지 4년 동안 스위스 제네바 WTO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 것이 바로 중국을 WTO에 가입시킨 것"이라며 "중국이 이후에도 WTO 규범을 비교적 잘 지키는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의 첫 책에는 한국인 최초로 WTO 사무총장 선거에 도전했던 일화도 담겨 있다. 사무총장 대신 사무차장으로 국제기구에서 열정을 쏟은 그는 퇴임 후 2005년부터 특허법률사무소 리인터내셔널 산하 무역투자연구원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통상과의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출근하는 추경호 신임 원내대표 곡성세계장미축제, 17일 ‘개막’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휴식...경춘선 공릉숲길 커피축제

    #국내이슈

  • '머스크 표' 뇌칩 이식환자 문제 발생…"해결 완료"vs"한계" 마라도나 '신의손'이 만든 월드컵 트로피 경매에 나와…수십억에 팔릴 듯 100m트랙이 런웨이도 아닌데…화장·옷 때문에 난리난 중국 국대女

    #해외이슈

  • [포토] '봄의 향연' [포토] 꽃처럼 찬란한 어르신 '감사해孝' 1000개 메시지 모아…뉴욕 맨해튼에 거대 한글벽 세운다

    #포토PICK

  • 3년만에 새단장…GV70 부분변경 출시 캐딜락 첫 전기차 '리릭' 23일 사전 계약 개시 기아 소형 전기차 EV3, 티저 이미지 공개

    #CAR라이프

  • 앞 유리에 '찰싹' 강제 제거 불가능한 불법주차 단속장치 도입될까 [뉴스속 용어] 국내 첫 임신 동성부부, 딸 출산 "사랑하면 가족…혈연은 중요치 않아" [뉴스속 용어]'네오탐'이 장 건강 해친다?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