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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의 여행만리]넌 뿔났니, 우린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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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봄, 쇠뿔꽃이 피다-122년 소싸움 발생지 진주를 가다

진주는 122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소싸움의 발생지다. 봄이면 어김없이 들판에 활력 넘치는 소 입김이 대지를 깨우고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소들의 명승부가 펼쳐진다.

진주는 122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소싸움의 발생지다. 봄이면 어김없이 들판에 활력 넘치는 소 입김이 대지를 깨우고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소들의 명승부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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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봄 햇살에 반짝이는 뿔이 검객의 칼날처럼 날카롭다. 모래판을 헤집는 말뚝 같은 앞발에 모래알이 산산히 흩어진다. 고삐 풀린 싸움소가 머리를 맞대고 기 싸움을 한다. '탁탁' 쇠뿔과 쇠뿔이 맞서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서로 머리를 짓이기며 맞선 뿔과 뿔사이로 정작 불꽃이 튀는 것은 다름 아닌 겨누고 맞선 눈이다. 그 순하디 순한 왕방울눈에 핏기가 서리고 살기가 들때 소싸움은 절정에 이른다. 거친 콧김을 뿜어내며 뿔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장(울타리를 두른 긴 말뚝)을 넘어 봄바람을 가른다. 등 돌릴 때까지 두 녀석의 싸움은 계속된다.
 
소싸움의 계절이 돌아왔다. 봄이면 어김없이 새생명이 돋아나는 경남 진주의 들판에는 '牛랏차차' 활력 넘치는 소 입김이 대지를 깨운다.

진주는 122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소싸움의 발생지다. 진주 소싸움은 신라가 백제와 싸워 이긴 전승 기념잔치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소싸움대회가 열리는 동안은 싸움소가 일으키는 뿌연 모래 먼지가 남강의 백사장을 뒤덮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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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군중의 함성은 하늘을 찔렀고 수백 개의 차일(볕을 가리는 도구)이 백사장을 온통 뒤덮었으며 차일 속에 오간 술바가지로 인해 양조장 술은 동이 났다. 일제 강점기때에는 우리 민족의 억압된 울분을 대신 풀어주는 장이기도 했다. 일본군들이 진주 땅에 들어설 때 군중이 백사장을 뒤엎고 시가지를 누비는 바람에 겁에 질려 남강 나루를 건너지 못했다는 일화도 있다.
봄비가 내리는 날, 소싸움의 발원지로 향했다. 대전ㆍ통영간 고속도로 서진주IC를 나오자 진양호공원에 자리한 소싸움장이 눈에 들어왔다. 매화가 활짝 핀 공원을 지나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입장을 기다리는 싸움소들이 내지르는 우렁찬 울음소리에 기가 질린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닮은 진주 전통소싸움경기장은 싸움소와 관중들이 내뿜는 열기로 가득하다. 싸움소들은 울장으로 불리는 원형의 모래판에서 상대가 달아날 때까지 힘자랑과 함께 온갖 기술을 선보인다.

겨우내 체력을 단련한 싸움소들의 입장식은 위풍당당하다. 왕방울 크기의 눈을 치켜 뜬 채 기 싸움을 한다. 어떤 녀석은 상대를 향해 덤벼들고 어떤 녀석은 경기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송아지처럼 껑충껑충 뛰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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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처럼 소싸움도 체급이 있다. 진주 소싸움은 백두(851kg 이상), 한강(671-850kg), 태백(671kg미만) 등 3종류다.
경기가 시작됐다. 한강급에 출전한 용심이와 돈오가 울장 한가운데에 섰다. 단단하게 생긴 두 녀석의 뿔이 상대를 향한다.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고삐 풀린 싸움소가 머리를 맛대고 힘자랑을 시작한다. 관중의 환호성에 흥분한 소들이 체중을 실어 몸을 움질일 때마다 모래알이 튀어 오르고 뿔이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울장을 가른다. 두 소의 날카로운 뿔이 칼날처럼 맞부딪칠 때마다 관중들은 움찔거린다.

싸움소들의 주무기는 뿔이다. 녀석들은 뿔의 모양에 따라 본능적으로 유리한 기술을 구사한다. 뿔은 비녀처럼 일자형으로 생긴 비녀뿔, 하늘로 치솟은 형태의 옥뿔, 옥뿔이 앞으로 굽은 노고지리뿔로 대별된다. 싸우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경우도 있지만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꼬리를 내려 큰 부상은 없는 편이다.
앞굽으로 모래판을 헤치며 상대를 노려보고(위 왼쪽), 머리를 맞대고 기싸움을 펼치고(위 오른쪽), 뿔치기, 옆치기 등 다양한 공격기술을 선보이고(아래 오른쪽), 등돌리고 떠나면 혈투는 끝난다(아래 왼쪽).

앞굽으로 모래판을 헤치며 상대를 노려보고(위 왼쪽), 머리를 맞대고 기싸움을 펼치고(위 오른쪽), 뿔치기, 옆치기 등 다양한 공격기술을 선보이고(아래 오른쪽), 등돌리고 떠나면 혈투는 끝난다(아래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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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심이와 돈오의 뿔모양은 옥뿔이다. 주특기를 뿔걸이로 사용하다보니 공격과 방어가 비슷해 일진일퇴다. 뿔을 흔들며 상대를 공격하는 뿔치기, 사력을 다해 밀어붙이는 밀치기, 상대의 옆구리 쪽 배를 공격하는 옆치기 등 다양한 기술들이 동원된다.

"와이라노, 보소 와이라노, 오늘 관중들 영~매너가 없네 꽝이다.", "소들이 쎄빠지게 치고박고 하는데 박수도 안치고 뭐하능교, 멀뚱 멀뚱 있을라며 여~뭐하로 왔노"

소싸움 해설사의 걸쭉한 입담이 거침 없다. 진주 소싸움의 재미중 해설사의 입담도 빼놓을 수 없다.

진주 소싸움 해설사는 10여년 경력의 강동길씨. 소싸움에 대해 해박한 지식으로 중계하는 해설은 폭소를 자아낸다.

"저 소 보이나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배가 둘쭉 날쭉 하제, 아예 혀를 빼물거나 똥ㆍ오줌을 싸면 영락없이 지는기라"

해설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친 호흡을 내쉬던 한 녀석이 등을 돌리고 출행랑을 친다. 20여분의 혈투가 끝났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도 재밌지만 꽁무니를 빼는 소들을 보는 것도 소싸움 판의 색다른 재미다.
진주 진양호 입구에 있는 전통상설소싸움경기장

진주 진양호 입구에 있는 전통상설소싸움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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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싸움 경기시간은 무제한이다. 통상 15~30여분이면 승부가 결정 나지만 어떤 녀석들은 1시간 이상 힘겨루기를 하기도 한다.

진주 전통 소싸움대회는 명절이나 축제 때 남강둔치 모래판에서 열리던 것을 2001년 상설화했다. 관광객들을 위해 2006년에는 진양호공원에 전용 소싸움경기장도 문을 열었다. 입장료를 안 받는데다 푸짐한 경품도 제공해 경기가 열리는 매주 토요일은 축제장이 된다. 3월에 개막해 11월에 최종전이 열린다.

싸움소들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와 관중들의 열기가 어우러져 진주의 봄이 활짝 열리고 있다.

진주=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가는길=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가다 대전ㆍ통영간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가다 서진주 IC를 나와 진양호방면으로 좌회전해서 5분여 가면 전통소싸움경기장이 나온다. 진주 투우협회 055-747-6159, 진주시청 문화관광과 055 749-5155 , 소싸움경기장사무실 749-2551.

△볼거리=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에서 1위를 차지한 진주성을 빼놓을 수 없다. 임진왜란때 진주 목사 김시민이 왜군을 대파한 진주대첩의 현장. 유유히 흐르는 남강을 굽어보며 묵묵히 서 있는 성은 진주의 상징이다. 성안에는 촉석루와 논개가 왜장을 안고 몸을 던진 의암, 국립진주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다. 진주성 아래 종합사회복지관 뒤편에 인사동 골동품거리가 있다. 서부경남의 유일한 인공호수인 진양호도 있다. 지리산 자락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도 일품이지만 해질녘 호수를 물들이는 모습은 장관이다.

△먹거리='꽃밥'으로 불리는 진주비빔밥(사진)이 유명하다. 중앙시장의 천황식당(055-741-2646)이 알려져 있다. 전주 비빔밥과는 사뭇 다른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 헛제사밥과 진주교방음식도 별미. 진주성과 진주교로 이어진 장어거리에선 남강을 벗삼아 장어구이를 맛볼 수 있다. 하연옥(055-746-0525)은 진주냉면과 온면을 맛나게 낸다고 소문이 났다.
진주성 야경

진주성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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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호 물새의 자맥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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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에 잠긴 촉석루

봄비에 잠긴 촉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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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둔치 대나무숲길에서 바라본 진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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