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꺼림칙한 출발이다.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 중 열린 일곱 차례 연습경기에서 12타수 무안타(4볼넷)에 그쳤다. 2년 연속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와 홈런왕에 오른 박병호(28ㆍ넥센 히어로즈)가. 이택근(13타수 6안타 타율 0.462)과 강정호(15타수 5안타 타율 0.333) 등 동료의 활약 덕에 그의 부진이 묻혔을 정도다.
박병호에게 올 시즌은 특별하다. 외국인타자들이 3년 만에 국내 리그에 합류한다. 4번 타자로서 해결사 역할과 함께 토종 거포로서 자존심도 세워야 한다. 경쟁해야 할 선수 중에는 메이저리그 출신의 거물이 많다. 그들과 홈런왕 등 공격 타이틀을 놓고 각축해야 한다. 2012년 홈런 31개, 2013년 37개로 타이틀을 차지했지만 올해는 만만찮다.
칸투 역시 두산의 4번을 책임질 타자다. 빅리그 통산성적은 2004년부터 총 847경기 출장에 타율 0.271 104홈런 476타점. 지난해 멕시칸리그에서는 31홈런을 때려냈다. 여기에 팀 동료 강정호(27)와 최형우(31ㆍ삼성), 최정(27ㆍSK) 등 국내 타자들도 박병호의 아성에 도전할 다크호스다.
박병호가 유리한 점도 있다. 외국인타자들은 한국 야구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적응에 실패해 성적이 부진하면 보따리를 쌀 수도 있다. 시즌 개막 후 본격적으로 국내 투수들을 상대해 봐야 옥석이 가려질 것이다. 당장 박병호와 함께 홈런왕 타이틀을 겨루기는 쉽지 않다는 의미다.
프로야구에 외국인선수제가 도입된 1998년 이후 외국인타자가 홈런왕을 차지한 시즌은 두 차례다. 도입 첫 해 타이론 우즈(45ㆍ42개ㆍOB)와 2005년 래리 서튼(44ㆍ35개ㆍ현대)이다. 3년 연속 홈런왕은 이만수(56ㆍ1983~1985년) SK 감독과 장종훈(46ㆍ1990~1992년) 한화 타격코치, 이승엽(38ㆍ삼성ㆍ2001~2003년) 등 세 명이 기록했다. 박병호는 2010년 이대호(32ㆍ44개) 이후 중단된 40홈런 대열에도 4년 만에 도전한다.
박병호는 4일 모든 스프링캠프 일정을 마친 다음 "홈런왕을 의식하고 시즌에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차분한 자세로 새 시즌을 맞겠다는 각오다. 그러면서도 "(외국인타자들과) 좋은 경쟁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올 시즌 목표로는 "지난해보다 팀의 정규리그 순위가 올라가는 것과 4번에서 전 경기를 소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문회 넥센 타격코치 역시 "지난해보다 더 터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5일 선수단과 함께 귀국하는 박병호는 8일 일제히 개막하는 시범경기 첫 판부터 시험대에 오른다. 상대는 두산이다. 3년 연속 MVP와 홈런왕, 골든글러브 등 어느 해보다 놓치고 싶지 않은 타이틀이 많은 해다. 외국인타자들의 거센 물결을 이겨내고 토종거포로서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을까. 그의 방망이는 오는 29일 SK와의 문학 개막전을 기다리고 있다.
나석윤 기자 seokyun198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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