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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자화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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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가 많이 친절해져서 '당기세요' 또는 '미세요'라고 적힌 문이 많지만, 전에는 밀건 당기건 어디 당신 뜻대로 한번 해보시라는 문이 대부분이었다(간혹 '밀어유' 또는 '당겨유'도 있는데, 이건 유머나 재치, 또는 개성을 빙자한 촌스러움을 넘어 야만이나 폭압에 가깝다는 게 내 생각이다. 충청도 향우회가 있는 날이어서 특별히 그렇게 적어놓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무런 설명이 없는 불친절한 문에 당도하면 대개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당기거나, 밀거나. 이 경우 문이 열릴 확률은 50%다(물론 밀어도 열리고 당겨도 열리는, 친절하지만 헤픈 문은 제외하고).
인생도 마찬가지여서 '50% 확률'에 직면할 때가 적지 않다. 이 대목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떠올리는 독자가 적지 않을 텐데 이건 좀 따져봐야 한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의 입을 빌어 세상에 내놓았다는 이 독백을 어떤 얼빠진 이가 '명언'의 반열에 올리는 바람에 세상에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이는데(나는 물론 주변에서도 원본을 다 읽고나서 이 독백을 인용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이 말을 아무 때나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게 내 소신이다. 죽음은 인생의 범주를 벗어난 다른 차원의 비즈니스니까 말이다('죽음 쪽 비즈니스'에 대해선 다음에 기회가 될 때 다시 짚어보기로 하고). 그러니 생과 죽음을 같은 항렬에 놓고 선택을 강요하는 건 100% 난센스인 것이다(이 글을 본 셰익스피어나 햄릿이 반론을 제기한다면? 글쎄, 당황스럽겠지만 큰 영광이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건 대개 소소한 것들이다. 주말 아침 '더 자든지, 일어나든지' 출근길에 '지금 이 만원버스를 탈지, 말지' 눈앞의 이 여자(또는 남자)와 '더 살 것인지, 헤어질지' 이 회사를 '더 다닐지, 그만둘지' 등등. 다만 확률은 50%로 같더라도 문과 우리 인생이 서로 다른 게 하나 있다면 문은 밀거나 당겼다가 안 열릴 경우 다시 거꾸로 하면 열리지만, 인생은 한 번 더 선택할 수가 없다는 것.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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