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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詩]김광균의 '은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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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저문다/노을이 잠긴다/저녁밥상에 애기가 없다/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한밤중에 바람이 분다/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애기는 방속을 들여다 본다/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불러도 대답이 없다/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김광균의 '은수저'

■ 한번 만나면 잘 잊지못하게 되는 시가 있는데, '은수저'가 그렇다. 서른 즈음 시인 자신의 체험이었을까. 감정은 절제되어 있으나, 대뀬신 환영(幻影)과 환상이 열려 있다. 은수저가 있고 방석이 있는 것을 보면, 돌잔치를 치른 뒤에 잃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래 건강하게 살라는 뜻으로 건네지는 은수저는, 역설적이게도 임자를 잃은 뒤 머쓱하게 혼자 놓였다. 헤밍웨이가 썼다는 가장 짧은 소설이 생각난다. 여섯 개의 낱말로 된 스토리.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팝니다 : 아가 신발, 한번도 신지 않은.) 헤밍웨이는 이야기의 집을 간결하게 지은 뒤 그 내부 '사연'은 독자의 상상에 건축을 맡겼다. 김광균은 저녁밥상의 은수저와 한밤중 들창을 오가는 바람과 들길의 맨발 아기로, 공황을 겪고있는 부모를 사진처럼 찍어냈다. 슬픔과 전율은 독자의 몫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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