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아, 저詩]서정주의 '밀어(密語)'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하늘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 늘인/차일(遮日)을 두른 듯, 아늑한 하늘가에/뺨 부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

■ 사춘기 시절 내겐 서정주의 이 시가 '야동'이었다. 이보다 더 야하고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비주얼은 없었다. 이제 돌아와 다시 이 시의 맨살을 들여다보니, 뭐가 야했는지, 글쎄? 그의 시 '입맞춤'은 '짐승스런 웃음은 달더라 달더라 울음같이 달더라'라는 음흉스런 뭔가라도 있지만, 여기엔 그런 것도 없지 않은가. 내가 그때 심정적으로 자지러진 건, 아마도 몇 개의 낱말이 슬쩍슬쩍 흘린 유혹의 기미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잿빛의 문은 아직 '여자'가 되지 못한 성기처럼 느껴졌고, 한없는 누에실은 요즘으로 말하면 '시스루(see through)패션'이고, '뺨 부비며 열려있는'은 애무와 노출이고, '가슴같이 따뜻한'은 벌써 슴가골로 진입한 상황이고, '이제 바로 숨쉬는'은 그 가슴에서 듣는 소녀의 숨소리로 번역되었던 게 틀림없다. 꽃봉오리가 식물의 성기라는 걸 몰랐을 때인데도, 어떻게 그토록 '오버'할 수 있었는지, 나도 내 머리 속 회로가 궁금하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국내이슈

  • 때리고 던지고 휘두르고…난민 12명 뉴욕 한복판서 집단 난투극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해외이슈

  • [포토] '벌써 여름?'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포토PICK

  •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