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둘러싼 언론 보도 양상이 딱 그렇다. 김 위원장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남한 사회에 큰 혼란은 없다. 국민의 대다수는 북으로부터 전해지는 김정일 사망 관련 소식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차분하게 반응하고 있다. 조문을 둘러싼 남남갈등도 없고, 색깔론도 고개를 들지 않고 있다.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의 조문을 위한 방북도 '인간으로서의 도리'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 노무현재단의 조문을 불허했지만 조의문으로 대신하면서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17년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보다 '이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훨씬 성숙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정치권과 언론은 어떤가? 과거의 색깔론, 예를들어 "조문에 찬성하면 친북좌파", "반대하면 극우보수"라는 흑백논리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이를 기계적으로 전하는 언론의 보도태도도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문제는 이것이 실제로 남남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언가 제목 거리가 나오게 기사를 쓰고 싶다는 것은 모든 기자의 바람이다. 그렇다고 실체를 왜곡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정작 국민들의 의식은 엄청나게 성숙해진 반면 정치권과 언론의 문제의식은 17년 전 김일성 사망 시점에서 한 치도 발전하지 못한 것 같아 왠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민우 기자 m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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