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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의 건강맛집] "발효빵 나가신다, 빵빵~" - 해방촌 'HACKNEY 해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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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베이컨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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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서울 밖으로는 잠시도 벗어난 적이 없는 '서울 토박이'라 여겼지만, 서울에는 잘 모르는 알쏭달쏭한 동네 이름들이 널렸다. 말죽거리나 장승백이 등 그 동네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는 경우도 있고,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낙성대(落星垈)'나 왜색(倭色) 느낌이 강한 '명수대(明水臺)'처럼 이름 그 자체가 역사인 곳도 있다. 다소 재미있는 것들도 있다. 예비군 훈련장들이 밀집된 구파발 근처 '기자촌(記者村)'이 그랬다. 지금은 '외딴 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허허벌판 시골이지만, 여기가 196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집단 거주 마을을 조성하려는 기자들에게 내준 땅이었다는 전사(前史)를 듣고 신기했다. '해방촌(解放村)'이라는 구시대적인 '필'의 동네도 있다. 저런 이름이 왜 붙여졌는지 대략 추측할 수는 있지만, 정확히 이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서울 토박이들 사이에서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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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2호 터널과 3호 터널 사이 아래 자락의 해방촌은 용산구 용산2가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산 밑 작은 마을이다. 원래 일본군의 사격장이 있던 이곳에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들과 피난민 등 외지인들이 정착하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 반 세기 이상이 지났지만 해방촌의 정체성은 여전하다. 이태원, 이촌동, 한남동, 방배동 등과 함께 해방촌은 서울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 중 하나다. 주한 미군 가족이나 영어 원어민 강사 등 '일반적' 외국인들에 더해 나이지리아, 캐나다, 필리핀 등 그 다양성 면에서는 가히 서울 최고다. 상업화가 이미 완료된 이태원이나 이촌동이 아닌, 해방촌을 서울에서 가장 이국적(exotic)인 공간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시아경제의 건강맛집] "발효빵 나가신다, 빵빵~" - 해방촌 'HACKNEY 해크니' 원본보기 아이콘


오래된 연립 주택과 삼겹살 고깃집, 외국인 대상의 술집과 커피숍, 중동 사원 등 서로 이질적인 것들이 자유롭게 공존하는 해방촌 길가에 현대적인 느낌의 커피숍 'HACKNEY 해크니'(이하 해크니)(전화_02-794-2668)가 있다. 영국 런던에 가본 적 있다면 '해크니'라는 이름에서 해방촌과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다.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과 외국 이민자들이 모인 런던의 부도심 해크니는 한국과 일본 관광객들에게는 '버버리 아울렛'이 있는 필(必) 방문 지역으로 유명한 곳. 상류층 지역도 아니고 범죄율도 다른 런던 지역에 비해 높지만 런던의 역동적인 지금을 경험할 수 있는,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 혹은 그리니치 빌리지와 동급인 곳이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이태원과 강남에 질린 젊은 서울 사람들이 모여드는 해방촌의 현재를 말하는 듯한 탁월한 작명법이다.


터키 샌드위치

터키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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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크니'의 외양은 압구정 가로수길이나 홍대 앞에서 흔히 본 커피하우스와 별반 다를 것 없다. 시원한 통 유리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그 사이로 보이는 하얀색과 회색이 지배하는 내부는 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함과 아늑함을 절로 안긴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내리는 여러 종류의 커피와 유기농 인증 수제차 브랜드 '리쉬 차(Rishi Tea)' 등 해크니의 드링크 메뉴는 '고만고만'하다. 그러나 샌드위치와 빵 부분에 오면 확연히 달라진다. 해크니는 샌프란시스코 스타일의 '사워 도우(sour dough)' 방식을 거친 빵만을 사용한다. '신 반죽'이라는 뜻의 사워 도우 빵은 천연 발효종 반죽을 이틀 동안 저온 숙성한다. 반죽 자체의 첨가 재료와 믹싱 중에 함유된 공기 중의 미생물 활동으로 산미(酸味)를 띠는 것이 주요한 특성이다. 근대 발효법이 확립되기 전 사용되던 최초의 발효법인 사워 도우는 지금도 호밀빵이나 이태리빵 파네토네(Panetone) 등을 만들 때 젖산균과 초산균 등 유기산과 풍미 생성을 위한 발효법으로 활용된다.


심플리 치즈 샌드위치

심플리 치즈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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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해크니에서 네 종류의 뜨끈한 발효빵 샌드위치와 토스트, 크렘 브륄레와 브레드 푸딩을 맛봤다. 일단 빵이 달라도 너무 달랐으며, 가격이 '지나치게' 저렴하다는 것도 만족스러웠다. '퍽퍽'할 것이라는 샌드위치 빵의 선입견과는 달리 촉촉한 속과 바삭한 겉의 조화가 근사했으며, 빵 자체가 품고 있는 묘한 신 맛은 식욕을 충분히 돋우고도 남았다. 메이플 시럽 훈연 햄과 체다ㆍ모짜렐라 치즈만을 넣은 심플한 '심플리 치즈 샌드위치', 달콤한 칠면조 햄에 프로불로네 치즈와 채소, 올리브, 토마토를 끼운 '터키 샌드위치', 칠리 소스로 양념한 닭 가슴살을 넣은 '닭 가슴살 샌드위치' 등 해크니의 모든 샌드위치들은 모두 빵과 속 내용물의 조화가 훌륭했다. 또한 바닐라 커스터드에 재워 구운 다섯 가지 발효빵에 여러 과일과 블루베리 소스, 아이스크림을 얹은 '브레드 푸딩'은 시각과 후각, 미각을 두루 만족시켰다.


해방촌 해크니는 싸구려 샌드위치와 빵에 진력난 기자에게 샌드위치의 새로운 세계로의 문을 열어준 기특한 안내자였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 건 꽤 오랜만의 일이다. 해크니가 그런 곳이다.


크렘 브륄레

크렘 브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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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 푸딩

브레드 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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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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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HACKNEY' 김지수,염영일 사장


'HACKNEY' 김지수(왼쪽),염영일 사장

'HACKNEY' 김지수(왼쪽),염영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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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문화가 공존하는 런던 해크니를 여행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거대자본이 지배하는 이태원이나 홍대, 압구정동 가로수길, 한남동과는 달리 덜 개발되고 소박한 해방촌이라는 동네와 잘 어울리는 작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방촌 길가에 위치한 '해크니 HACKNEY'는 김지수(41), 염영일(40) 이렇게 두 명의 인상 좋은 '아저씨'들이 운영하는 커피하우스다. 일단 둘의 이력이 상당히 독특하다. 김씨는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여러 히트 광고들을 제작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로, 해크니 운영 외에도 지금도 프리랜싱으로 광고 작업을 계속 하는 광고쟁이다. 또한 염씨는 스타벅스와 압구정동 가로수 길의 여러 커피숍을 두루 섭렵한 10년 경력의 바리스타다. 영국 런던 해크니를 꼭 닮아있는 해방촌에서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던 두 친한 친구들은 이내 의기투합해 3개월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쳐 올 10월 해크니를 오픈하기에 이르렀다. 커피와 샌드위치 등 음료와 디저트 제조, 홀 서빙 등 해크니의 모든 것들은 이 둘이 모두 담당한다.


김씨와 염씨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역시 식재료다. 이들은 서울에서도 낯선 축에 속하는 샌프란시스코 발효 빵 샌드위치를 본고장 맛 그대로 선보이려고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최고급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한다. 하지만 메뉴들의 단가는 가로수길이나 홍대 앞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좀 덜 벌더라도 이태원처럼 번잡하지 않아서 좋아요.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오는 남산을 보면 마음이 절로 정화되는 것 같습니다." 염씨의 말에서 해크니가 '착한' 가격, '착한' 경치에 주인의 '착한' 마음씨까지 장착된 '착한' 카페였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진다.


알고 먹읍시다 // 샌드위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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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샌드위치는 제대로 끼니를 챙길 시간이 없을 때 근처 편의점에서 서서 '쓱싹' 해치우는 싸구려 패스트푸드 정도로 인식된다. 지나치게 일반적인 음식이 된 탓에 역사도 족보도 없는 음식으로 보이지만, 샌드위치는 유구한 역사와 다양한 종류를 가진 대표 서양 음식 중 하나다.


잘 알려진 대로 샌드위치는 1792년 영국의 존 몬타규 샌드위치(John Montagu Sandwich) 백작의 엄청난 트럼프 사랑에서 시작됐다는 평이 유력하다. 식사할 시간도 아까웠던 그는 육류와 채소류를 빵 사이에 끼운 것을 테이블 옆에 놓고 먹으며 트럼프를 계속했다고 하니, '폐인'의 원조 격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샌드위치의 역사는 이보다는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시대에 검은 빵 사이에 육류를 끼운 음식이 식사 대용으로 사용되었고, 러시아 등 슬라브 권에서도 샌드위치와 유사한 전채(前菜) 종류가 발견되기도 한다.


18세기 버전이 단지 쇠고기를 사이에 끼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육류와 가공품, 어패류, 채소류, 과일, 잼, 스프레드 등 '충전물'(filling)이 무척 다양하게 되었다. 형식 면에서도 다채롭다. 2장의 빵 사이에 충전물을 채운 '클로즈드(Closed)' 샌드위치가 가장 일반적인 것이다. 여러 장의 빵 사이에 충전물을 채운 것을 '클럽(Club)' 샌드위치라고 하며, 빵 위에 충전물을 얹고 빵을 포갠 뒤 자른 것이 '리본(Ribbon)' 샌드위치다. 또한 버터 바른 빵 위에 충전물을 얹어 냅킨으로 말면 '롤(Roll)' 샌드위치가 된다. 마지막으로 빵 위에 육류와 채소를 얹고 빵을 포개지 않은 것이 '오픈(Open)' 샌드위치. 카나페(canape)라는 훨씬 우아하고 정갈한 이름으로 불리는 고급 샌드위치다.






태상준 기자 birdcage@·사진_이준구(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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