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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그리스, 제 버릇 남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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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리스만큼 욕을 많이 먹는 나라는 보기 드물다. '낭비벽이 심하다'는 말은 매우 점잖은 축에 속한다.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리스 짐승을 길들이는 법'이라는 26일자 칼럼에서 아예 '개'에 비유했다. 그리스는 다른 나라의 '본보기'라기보다는 '짐'으로 전락했다.

욕을 먹으면 오래 산다는 시쳇말이 있지만 이 정도 욕을 얻어먹고 웃을 사람은 별로 없다. 아마 이 칼럼을 읽은 그리스 사람이라면 분기탱천했을 것이다. 이 칼럼을 쓴 사람은 대놓고 "욕을 먹어도 싸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그런 속내를 굳이 감추지 않는다.
그리스는 널리 알려졌듯이 이미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다. 유럽연합(EU) 국가와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금융기구가 빌려준 돈이 아니었더라면 공무원은 월급이나 은퇴자 연금은커녕 빵 한 조각 기름 한 방울 사올 돈도 없는 처지였다. 그리스가 망하면 불똥이 이웃 나라로 튈 것 같아 유럽 각국은 돈을 모아 건넸다. 그런데도 그리스는 또 2014년까지 돌아오는 만기 국채를 갚을 도리가 없다며 손을 벌렸다.

유럽 각국이 인내심의 한계를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구제금융 지원조건인 자산매각과 구조조정은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것으로 다른 유럽 사람들은 판단하고 있다. 이 칼럼니스트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리스 정부가 내핍조치를 취했다고 하나 지출은 오히려 늘어났다. 실업률이 15.8%에 이르고 특히 청년 실업이 40%나 되면서 실업급여 지급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리스 정부는 구조조정의 '도끼'를 실제로 날리기보다는 흔들어 보이기를 더 좋아했다. 해고보다는 급여를 깎고, 일자리은행에 보내는 게 전부였다. 공무원들은 해고되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은 독일 의원은 꿈도 못 꿀 관용차를 여전히 타고 다닌다. 학생들은 대학에서 무료로 교육받을 헌법의 권리를 누린다. 대학생들은 학위를 받기 위해 보통 7년을 보낸다고 한다. 영국 학생들이 내년부터 연간 9000파운드(연 1만5000달러)를 부담해야 할 판이니 FT 칼럼니스트의 울화통이 치밀어오르지 않았다면 이상하다.

정부와 정치권, 국민이 이렇게 똘똘 뭉쳐 마구잡이로 돈을 썼으니 국가부채가 3500억유로(약 4000억달러)로 불어나고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리스사람들은 너그러운 정부의 후한 지원에 익숙해 '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FT는 꼬집었다. 여전히 "더 달라"고 외치고 있다. 우량 공공자산 매각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면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대에는 개도 끼어 있었다. 머리 셋에 꼬리가 달린 이 개는 눈을 부릅뜬 채 500유로짜리 돈다발을 삼키려 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FT 칼럼니스트는 그리스를 정상으로 되돌려놓기 위한 해법 4가지를 제시했다. 고위관료와 기업인을 포함한 부정부패를 단속하고,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정부 징세기구를 민간 독립기구로 대체하며, 유럽의 지원기금 분배 방식을 개선하고, 세금을 인하하라는 게 그의 처방이다. 이는 그리스가 앓고 있는 중병의 실체다.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고, 탈세로 세금징수가 제대로 안 되며 유럽각국의 지원금을 관료와 정치권이 떡 주무르듯이 맘대로 써왔다는 말을 돌려서 한 말이다.

이런 풍토를 개선하지 않은 채 돈만 지원한다고 해서 그리스가 살아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 아닐까. 자손 대대로 갚아야 할 빚을 지고, 구조조정과 자산매각 등 뼈를 깎는 노력을 거부하니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이 그리스를 욕하고 비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온 세상이 욕을 하니 오래 살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욕을 먹지 않고, 칭찬을 들으면서 오래 사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박희준 부국장 겸 국제부장 jack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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