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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고립24시]고립의 끝에 남겨진 흔적들…"엄마·아빠 보고 싶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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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곁에서 바라본 고립·은둔 청년들
②현직 경찰-특수업체 관계자들이 전한 고독사 현장
낙서, 일기 등에 남겨진 청년들의 목소리

편집자주퇴근 후 혼자 끼니를 때울 때,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는 수백개지만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을 때, 아프거나 돈이 없는데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때... 아시아경제가 만난 20·30대 청년들은 이럴 때 고립감을 느꼈다고 털어놨습니다. 혹시 당신의 이야기는 아닌가요?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와 같은 단어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왔다면 이제는 고립·은둔을 다시 제대로 바라볼 때입니다.
[청년고립24시]고립의 끝에 남겨진 흔적들…"엄마·아빠 보고 싶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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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총각이 2년 전부터 살았는데 최근 월세도 안 주고 전화도 안 받고 그래서 올라와 보니..."

"참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한 번도 힘들다고 투정하지 않았는데..."


책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이다'에서 저자 권종호 경감은 29세 청년의 고독사에 집주인과 가족은 이렇게 고인을 기억했다고 적었다. 고독사 현장이 발생하면 경찰은 사체를 정리한 뒤 고인에 대해 탐문하는 과정을 거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어떻게 목숨을 끊었는지 등 현장 검식을 통해 사인을 조사한다.

권 경감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겪었던 청년 고독사 현장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청년층의 고독사는 유서를 남기는 경우도 있지만, 낙서 같이 끄적인 흔적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내용은 비슷하다. 돈이 있으면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꿈, 버킷리스트, 성공하면 하고 싶은 것들이다. 가족에게 남긴 글도 있다. 엄마, 아빠 보고 싶다, 미안하다는 내용이다.


권 경감은 청년들이 고독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로 '경제적 빈곤'을 꼽았다. 비좁은 방과 10원도 없는 잔고를 공통점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누군가를 부정하거나 원망하는 목소리는 없다. 권 경감이 청년 고독사를 떠올렸을 때 더 안타까웠던 이유다. 고민을 털어놓은 대상도 없었다. 가족, 친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인의 가족은 오히려 아무 문제 없이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연락을 매일 하진 않아도 가끔 생존 신고를 했기에 잘살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정부로부터도 받을 수 있는 보호가 아무것도 없어요. 거의 외딴 섬입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물론 돈도 없고 희망도 없고 미래도 없다고 자포자기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청년들에게 그것보다 더 힘든 건 누구 하나 자신의 힘든 마음을 알아주려고 하지 않는 것, 손을 내밀지 않는다는 거예요. 무관심 속에서 살아가는 거죠. 어찌 보면 중장년층보다도 더욱더 힘든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떠난 이들을 위한 마지막 정리...특수청소업체

경찰이 제일 먼저 현장을 확인한다면, 마무리는 특수청소업체로 넘어간다. 청년 고독사 현장 정리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특수청소업체 소속 3명의 직원을 취재하며 현장에 동행했다. 이들이 하는 건 단순한 '청소'의 개념이 아니었다. 일반 청소업체에서는 할 수 없는 디테일하고 섬세한 과정이 요구된다. 유품을 정리하고 유족에게 연락해 전달하며, 시취 등의 냄새를 빼는 과정과 더불어 벽지와 바닥을 뜯는 등의 대공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인생, 그 마지막을 집약적으로 볼 수 있는 현장에는 고인이 먹다 남긴 라면, 빵, 음료, 영양제, 생전에 신던 신발과 옷가지, 사진 등이 있다. 현장에서 한 사람의 서사도 느낄 수 있었다. 특수청소업체 직원들은 혈흔과 시취 등 죽음의 고통이 남은 현장은, 마주한 경험이 아무리 쌓여도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부분이라고 입 모은다.


"얼마 전에 번개탄을 피웠다고 냄새를 제거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느낌이 싸하더라고요. 빨리 가봐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20대 남성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을 시도한 거더라고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냄새 등 흔적이 남을 것 같아 연락한 것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얘기를 한참 하고 왔어요. 기운 내라, 힘내 보자, 그런 말이요."


서울 신림동의 옛 고시원들은 대부분 원룸 건물로 개축되어 거리를 빼곡히 메우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서울 신림동의 옛 고시원들은 대부분 원룸 건물로 개축되어 거리를 빼곡히 메우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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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섭 집치워주는 사람들 대표는 한 청년의 연락을 받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숨을 가다듬었다. 자살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의 힘든 이야기를 한참 듣고는 '기운 내라'라고 용기를 전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청년의 고독사 현장을 직접 목격하는 특수 청소부들은 최근 죽음에 이르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가정폭력이나 재산 갈등 같은 가족과의 불화부터 학교 폭력의 트라우마, 실업 등으로 경제 활동이 어려워진 경우, 코인이나 주식으로 재산을 날린 경우까지 이들이 목숨을 내려놓는 이유는 단순히 몇몇으로 정의하기 어렵다고 한다.


특수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 김새별 대표는 청년 고독사 현장을 통해 '경쟁사회'의 이면을 봤다고 전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향도 많이 받는다고 느꼈다고 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타인의 일상과 자기 삶의 다름을 비교하며 '나만 이러네' '난 왜 이러지'라는 자괴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일기, 낙서 등은 남겨진 주인 없는 방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고 했다.


"청년들을 보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좋은 대학,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 그 뒤에는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죠. 이 범주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실패했다고 느끼고, 불안해지는 거죠. 행복에 대한 감정을 잘 몰라요. 치열한 삶을 버티고 있는데 행복을 찾을 수 있나요?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데 방안을 모르는 것도 문제예요. 또 자신감이 없어요. 자기 생각이나 감정보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우려하죠. 청년들을 바라보는 가족, 지인, 기성세대의 시선도 달라질 필요가 있어요. '정신 차려' '언제까지 이럴 거야' '나 때는 이렇지 않았어' '아직도 그 소리야'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것보다 '힘들면 그냥 누워있어' '무리해서 일어서 있으려고 하지 마'라는 말이 오히려 위로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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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고립24시]고립의 끝에 남겨진 흔적들…"엄마·아빠 보고 싶다, 미안하다" 원본보기 아이콘
'청년고립24시' 기사가 읽고 싶다면
<1>아시아경제가 만난 고립·은둔 청년들
① 나는 28세 고립청년입니다…"1인분 역할 못하는 존재"
② 취업이 만든 고립…온종일 한마디 안한채 보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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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3년간 햇반·라면 먹고 온종일 게임만…정서적 불안 심해지면 결국엔

<2>2024 고립 인식조사
① 10명 중 6명 "외롭다"…관계단절·박탈감 고통 호소
② "회사서 홀로 선 느낌"…직장인 2명 중 1명 "고립감 심해져"

<3>곁에서 바라본 고립·은둔 청년들
① 코로나 학번'이 위험하다...올해 빗발친 상담전화
② 고립의 끝에 남겨진 흔적들…"엄마·아빠 보고 싶다, 미안하다"




김진선 기자 caro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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