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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 둥! 둥! 여전히 울리는 신문고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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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높이 맞추는 게 소통의 시작

[아시아경제 백재현 기자]

“둥! 둥! 둥! 전하! 천하에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10년 전 오늘. 조선의 3대 임금 태종은 대궐 밖 문루에 큰 북을 매달았다.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직접 해결해 주기 위해서다. 신문고(申聞鼓)다.
반상(班常)이 엄연한 신분제 사회에서 고을 원님 뵙기도 어려운 마당에 감히 나라님을 직접 뵙고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다는 건 여간 파격이 아니다.

그러나 신문고는 그 화려한 취지와는 달리 현실적으로는 불합리한 점이 많았다. 우선 평민들이 신문고에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신문고가 죄인을 다스리는 의금부 관할이어서 일반인들에겐 심리적 장벽부터 높았다. 게다가 서울에서는 주장관, 지방에서는 관찰사에게 신고해 사헌부에서 먼저 해결토록 하고 해결이 안되는 경우에만 신문고를 울릴 수 있게 했던 것이다.

특히 먹고 살기도 힘든 지방 평민들에게는 신문고를 울리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서울로 올라 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내용면에서도 제약이 많았다. 함부로 상관이나 주인을 고발 할 수 없게 했다. 그래도 신청인이 많아지자 범위를 더욱 엄격히 제한했다. 자기 자신에게 관한 일, 부자지간에 관한 일, 적첩(嫡妾)에 관한 일, 양천(良賤)에 관한 일 등과 자손이 조상을 위하는 일, 아내가 남편을 위하는 일, 아우가 형을 위하는 일, 노비가 주인을 위하는 일 및 기타 지극히 원통한 내용에 대해서만 신문고를 사용하도록 했다. 오히려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거나 대상이 되지 않는 일로 신청을 할 경우 처벌까지 받아야 했다. 자칫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꼴이 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결국 신문고는 그 취지와는 달리 주로 서울의 관리들만 이용했으며 일반 상인이나 노비, 지방에 사는 관민에게는 효용이 크지 않았다.

60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훨씬 문명화 됐고 민주화됐지만 조선시대에 비해 억울한 사람이 줄었다고 할 수 있을까? 천정부지로 오른 전셋값 때문에 세입자가, 좁디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둥둥둥 북이라도 울려 호소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1세기형 신문고인 국민신문고(www.epeople.go.kr)가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을 맡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작은 소리도 크게 듣겠습니다’라는 큼지막한 문구가 눈에 띈다. 국민신문고는 신청 민원의 내용에 제약을 두지 않고 있으며 신청 절차도 비교적 간편하다. 청와대 홈페이지는 물론 주요 행정기관의 홈페이지와 연결이 돼 있어 사용이 편리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방 민원인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해 이동신문고도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지난달에는 UN공공행정상을 수상했다. 지난 1일부터는 모바일 웹 서비스도 시작했다. 스마트폰 이용자 1천500만명 시대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인터넷 게시판이나 블로그에는 국민신문고의 운영과 관련해 ‘이런 민원답변을 들으려고 민원을 제기한 것이 아닌데..’라든가, ‘진정한 소통은 아직 부족하다’는 등 비판의 글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다문화 시대에 발맞춰 다국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민원인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입장에서 보면 섭섭한 글들일 수 있다. 실제로 국민신문고의 공식 페이스북은 ‘좋아요’를 누른 사람 수가 5만7천명이 넘는 등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어내고 있다.

결국 문제는 눈 높이에 있다. 진정한 소통말이다. 수백만명이 실시간으로 연결돼 움직이고 있고, 클릭 한 번으로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요즘시대에 물리적 장벽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작은 소리를 크게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원인의 눈 높이에서 듣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민원인의 입장에서는 간절한 내용인데 이에 대한 답변 내용이 상투적이거나 요식행위처럼 느껴진다면 진정한 소통은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직도 사회 도처에서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리고 있다.




백재현 기자 itb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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