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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칼럼] 은행원의 바닥 계급,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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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과 대우 '하늘과 땅'차이
수습비용으로 정식직원 뽑아야


[아시아경제 이상일 논설위원] 인도의 카스트제 같은 신분 구분이 은행에도 있어요." 한 은행원은 겉으로는 똑같이 양복 입고 넥타이 맨 은행원이지만 '출신 성분'에 따라 4개 계급이 명확히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은 다소 과장됐지만 들어보면 수긍되는 면이 없지 않다.
그가 동료들과 자조적으로 미국 영주권을 빗대 구분한 은행 계급은 이렇다. 은행 카스트의 가장 높은 계급은 정규직 대졸 사원. 미국의 중심 세력인 '와스프(WASPㆍ영국계 백인 앵글로색슨 신교도인)'에 버금간다. 은행에 확실히 자리 잡은 '영주권 소지자'다. 두 번째 높은 은행원 신분은 무기한 계약직인 창구 직원들. 미국의 영주권을 가진 흑인 정도에 해당된다. 세 번째 계급은 전문계약직으로 이른바 '워킹 비자(working visa)' 소지자. 특수업무 처리를 위해 고용됐다가 프로젝트가 끝나면 해고되는 은행원이다. 네 번째가 가장 신분이 불안한 인턴 사원. 6개월 '관광비자'로 입행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들의 신분 계급을 웃어넘기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적지 않다. 어찌 보면 어느 은행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대부분 기업에도 적용된다.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지면서 등장한 계약직 사원은 시대의 흐름에서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래도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문제가 영주권 소지자인 정규 공채 출신과 관광비자 소지자인 인턴 사원 간 구별이다. 그들은 모두 대졸 출신이어도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대졸초임의 경우 정규직은 월 300만원 선, 인턴은 그 3분의 1인 100만원 안팎에 그친다. 정규직 공채는 50세 넘어 정년까지 보장되고 승진도 되지만 인턴은 6개월 후 해고된다. 채용 기준에 차이는 무엇일까. 어느 은행원은 경쟁률이 높은 은행의 정규공채 출신은 내로라하는 대학의 경제, 경영 등 인기학과 출신인 반면 인턴 사원은 학벌이 뒤지고 비인기학과 출신이라고 지적한다.
인턴은 6개월 정도 한 곳에서 경력을 쌓은 뒤 다른 직장 정규직 공채에 응모해 합격하는 것이 꿈이다. 인턴 경험을 잘 쌓아 다른 은행이나 대기업으로 전직에 성공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복사 등 허드렛일만 하다 6개월 후 떠나는 인턴이 태반이라고 한다. 정규직에 계속 불합격돼 여기저기 인턴만 전전해 '메뚜기 인턴'이란 말도 나왔다.

중소기업의 경우 인턴이 하는 일은 정규직에 상당히 가깝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2년간 청년 인턴 중 정규직 전환 비율이 80% 이상으로 높았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인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의문이 든다. 과연 이런 인턴 제도를 꼭 운영해야 하는가. 하는 일이 정규직과 비슷하고 정규직 전환 비율이 높다면 애초에 정규직을 늘릴 일이지 6개월간 임시직으로 묶어놓아 청년들의 신분 불안을 더 키울 필요가 있을까. 정부가 보조금을 주니 기업들이 정규직보다는 인턴을 선호하게 만든 면도 있을 것이다. 과거 정규직으로 채용해서 3~6개월 '수습'을 거치도록 한 것을 이제는 정식 채용은 늦추고 인턴으로 활용하는 느낌이다.

외국에서도 기업들이 인턴 사원을 뽑지만 이렇게 우리나라처럼 인턴을 대량 채용한 뒤 내보내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물론 인턴으로 수개월간이나마 청년 실업자를 구제해주니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수백명을 6개월간 채용하고 버릴 돈이라면 '낭비'다. 그 돈이면 정규직을 얼마라도 더 뽑아 훈련시키는 것이 사회적 낭비를 줄이는 더 나은 대안일 듯하다. 통계상 청년 실업자 수를 줄이는 데 인턴을 이용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면 정부는 인턴제의 부작용을 살펴 정규직을 늘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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