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않는 품격 진짜 '권위' 찾길
인간은 이성적 판단에 입각해 사물을 평가하거나 행동 방식을 정하는 때가 많지만 감정적으로 일정한 가치 기준을 설정하는 경향도 크다. 감정적으로 설정하는 경향은 특히 어떤 지위나 인물의 권위를 인정하고 이를 따르는 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정 대상에 권위를 부여하고 따르는 것은 대개의 경우 비합리적이지만 공동체 전체의 질서나 평화를 유지하는 데 그만큼 효율적 수단도 없다. 따라서 어느 사회든 권위는 그 구성원들이 꼭 필요한 감정적 가치기준으로 수용하게 마련이다.
최근 서울의 한 법원에서 40대 판사가 50대 여성에게 그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계속해서 반말을 하고 "이혼했는데 무슨 말을 해, 가만히 있어"라고 하는 등 재판과 관계없는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얼마 전엔 39세 판사가 법정에서 69세 소송당사자에게 "어디서 버릇없이 튀어나오느냐"고 막말한 일이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된 판사 막말 사례들을 보니 형사 피고인에게 90도로 인사를 하라고 강요를 한 판사가 있었는가 하면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에게 "열중 쉬어, 차렷, 앉아, 일어서"를 반복하게 한 소년법원 판사도 있었다.
'막말 판사' 사례는 권위와 귄위주의가 어떻게 다른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인류역사는 권위주의를 타파해온 역사다. 과거 봉건왕조나 교회 등이 누렸던 절대적 권위주의는 인간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대부분 타파됐다.
우리 사법부가 오늘날과 같은 권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비이성적 속박에 대한 우리 국민의 끊임없는 부정과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민이 부단한 민주화 투쟁으로 권위주의적 정권과 싸우지 않았다면 사법부 역시 아직도 '정권의 시녀'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법부는 아직도 전근대적인 권위주의의 탈을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지금 우리 사법부에 필요한 것은 권위이지 권위주의가 아니다. 권위는 품위 있는 재판,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고압적인 태도나 막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판사의 권위는 재판에서 국민의 권리구제라는 소임을 다할 때 스스로 빛이 나는 것이다.
사법부나 판사가 계속해서 권위주의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나마 아직은 갖고 있는 얼마간의 권위마저 조만간 모두 잃게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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