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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떠나는 전라도 여행[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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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시인의 담양정자, 시적 풍류의 산실<3>

송강과 술에 얽힌 이야기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만큼 유명합니다

송강과 술에 얽힌 이야기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만큼 유명합니다. 그는 술을 너무 좋아해서 언제나 술병을 끼고 살았고, 폭음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의 지나친 음주 습관은 정적들에게 공격의 호재가 되었습니다. 술에 취하면 감정을 참지 못하고 격렬하게 남을 매도하는 술버릇 때문에 더욱 적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선조도 술로 인해 공격당하는 그를 안타깝게 여겨 한번은 은잔을 하사하면서 “앞으로는 이 잔으로 하루에 한 잔씩만 마시라”고 특별히 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잔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잔의 안쪽을 두들겨서 사발 만하게 넓힌 다음 술을 부어 마셨다고 합니다. 그 은잔이 담양의 가사문학관에 전시되어 있으나 그것이 실제의 잔인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겉으로는 과격하고 직선적이며 성격이 급한 그였지만, 내면으로는 낭만적이고 나약한 면이 있어 더럽고 아니꼬운 현실에 대한 불만을 술로 해소하려고 한 경향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의 이러한 허무와 밀착한 애잔하기까지 한 삶은 유명한 '장진주사'(將進酒辭)에도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곳걱거 산(算) 놓고 무궁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우해 거적 덮어 주리 혀매여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이 우러예나,/ 어웃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 숲에 가기곧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눈 소소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할고./ 하물며 무덤 위 정자로 오르는 계단 에 잔나비 파람 불 제야 뉘우친들 엇지리.

술에 대한 그의 자세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향락주의나 현실도피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연을 배경으로 풍류를 즐기는 것은 당시 선비들의 전통적인 멋이었으며, 그의 시 세계를 깊이 관찰해 보면 모두 그의 생사관이 잘 어우러져 녹아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둔하면서 소쇄원을 짓고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송강정을 지나 소쇄원에 갑니다. 방금 현실도피 경향이라 한 바, 소쇄원의 주인인 양산보 만큼이나 철저하게 현실을 피하여 산중에 은둔해버린 사람은 조선 선비 중 그 누구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정암 조광조의 제자로 진정한 사표이자 삶의 이정표였던 스승이 기묘사화로 능주에 유배된 뒤 곧바로 사약을 받아버리자 당시 열일곱 살 나이에 받은 충격 때문인지 명리도 파벌도 없는 깊은 골짜기로 들어와 은둔하면서 소쇄원을 짓고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세상에 들고남이 없었던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쩌자고 그는 평생 문장 한 줄 남긴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소쇄원을 조성하며 그 분노의 문장을 청대숲으로 치솟게 하고, 그 결곡한 문장은 개울물소리에 흘려주고, 그 슬픔의 노래야 동박새 울음에 넘겨주고, 그 마음의 환희 또한 자미꽃으로 일렁이게 하며, 다만 광풍(光風)과 제월(霽月)로 호사를 누렸는지도 모릅니다.

문장 한 줄 남기지 않은 소쇄처사의 행적을 보며 나는 지금까지 써온 나의 시에 대해 항상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어떤 죽을 사람의 생명 하나 살리지도 못하는 시들을 세상에 대고 늘 주절거려오고 있으니, 은둔과 침묵의 소쇄옹이야말로 내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처사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할 밖에요.

“은둔은 모든 가면과 위선을 벗기는 일이다. 은둔은 절대로 허위를 참아주지 않는다. 명백한 확언이나 침묵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숲의 고요에 의해 조롱받고 심판받는다.”라는 말은 피터 프랜스의『삶을 가르치는 은자들』이란 책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그러기에 은둔은 도피도 아니요 초월도 아니며 삶에의 또 다른 열정으로, 그것은 침묵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박세채의 '처사공 양산보의 묘에 새긴 글'에서 보면 양산보가 저술을 하지 않은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힘과 마음을 다 할 것은 오로지 '대학'과 '중용'뿐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마음을 기울여 외우고 또 외웠다. 뿐만 아니라 오경(五經)의 글들을 즐겨 있었으며 정주학에도 심취하고 깊이 연구하여 독자적인 경지를 이루었다. 김인후와 서로 만나 학문에 대한 강론을 할 때는 침식을 잊을 정도였으나 저술은 하지 않았다. 선비가 하는 학문이라면 반드시 본말(本末)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이미 근본이 되는 일을 못하게 된 마당에 글을 써서 무엇 하겠는가”라는 부분입니다.

피나는 학문연마와 치열한 인격수양으로 수기(修己)의 단계를 거쳐도 치인(治人)의 단계로 나갈 마음이 없었던 양산보에게 있어 사실 문장 행위는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광풍각(光風閣)과 제월당(霽月堂)을 짓고 중국 북송의 주무숙처럼 “가슴에 품은 뜻의 맑음이 마치 비 갠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 같고 맑은 날의 달빛과도 같은” 그런 경지에 살고자 했음에 분명한 것입니다. 비록 양산보는 문장 한 줄 남기지 않았지만, 그 소쇄원에 들러 시문을 남긴 사람들은 부지기수였으니 송순, 임억령, 김인후, 유희춘, 기대승, 고경명, 김성원, 정철, 백광훈 등 모두 학문과 시문에 있어 걸출들이었습니다.


그중 하서 김인후의 '소쇄원사십팔영'(瀟灑園四十八詠)엔 소쇄원과 그 주변의 빼어난 절경이며 운치가 무슨 선경처럼 펼쳐집니다. 옛사람들은 관직에서 잠시라도 물러나면 늘 자연과 합일하는 어떤 풍류의 세계를 꿈꿉니다. 풍류라는 게 사전에 보면 “속된 일을 떠나 풍치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이라 정의되어 있는 바, 타의에 의해서건 자의에 의해서건 속계에서 물러났으니 마음 달래기용으로 의당 그럴 법도 하거니와, 여기에는 항상 시와 음악과 술 그리고 주변의 풍광이 호젓하고도 찬연하게 펼쳐지는 것은 필수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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