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최근 구조조정에 들어간 중견건설사 일부는 사옥괴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구조조정 대상 건설사 12곳(C등급 11개사와 퇴출 대상인 D등급 1개사) 중 몇몇 중견건설사가 사옥을 구입한 후 어려운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사옥의 저주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자금난으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건설사 대부분이 사옥을 갖고 있던 회사들이어서 생긴 괴담이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동아건설, 극동건설, 건영, 청구, 우방 등이 실제로 사옥을 보유한 상태에서 부도위기를 겪었다.
우스게소리처럼 들리던 이 괴담에 건설사들이 다시 부화뇌동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9월께부터다.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 2~3년 사이 사옥을 매입하거나 새로 지어 이전했던 건설사들이 주로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되면서다.
2007년 월드건설과 우림건설의 경우 강남에 오피스빌딩을 매입해 사옥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예전 사옥을 매각한 경험이 있던 성원건설도 2007년 경기도 용인으로 사옥을 직접 지어 이사했다. 안양에 터를 두었던 현진도 비슷한 시기 용인 분당으로 사옥을 지어 이전했다.
집짓기 전문가인 많은 건설사들이 오랜 시간 집 한 채 없이 세살이를 해온 것은 IMF라는 혹독한 시련으로 얻은 교훈 때문이었다. 원활한 자금유통을 위해서는 현금전환이 쉽도록 자금관리를 해야한다는 교훈이었다.
이들이 다시 사옥을 보유하게 된 것은 지난 6~7년간 호황기를 누리며 축적한 자금으로 재투자에 나서면서다. 강남에 사옥을 마련한 월드건설과 우림건설은 톡톡히 시세차익을 누렸다. 월드건설은 500억원대에 사옥을 매입, 이후 600억원대로 시세가 상승했다. 우림건설도 380억원대에 매입한 사옥이 현재 500억원대로 올랐다.
하지만 '사옥의 저주'라는 괴담이 맞기라도 하듯, 2~3년 사이 사옥을 매입한 중견건설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실제로 이번 12개사 구조조정 대상명단에 월드와 우림은 각각 이름을 올렸다. 다른 사옥을 가진 건설사들도 당분간 유동성 위기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런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사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경기가 호황이라고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하거나 무조건 짓고보자식 주택사업을 한 것은 화근은 불렀다. 잘못된 전략ㆍ전술 결과가 이들을 위기로 내몰았다. 결국 핵심경영전략의 부재가 '사옥의 저주'를 낳은 것이다.
정수영 기자 js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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