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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칼럼] 제이슨 본이 사드 사태에 던지는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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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논설위원

이명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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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물 ‘본 시리즈’의 주연배우가 며칠 전 한국을 방문해 출연한 방송 인터뷰를 보면서 왜 이 영화가 많은 인기를 끄는지 새삼 확인하게 됐다. 물론 현란한 격투신이나 탄탄한 스토리 구성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것이겠지만 내게는 그의 이 말이 인기의 큰 요인을 보여주는 듯했다. “제이슨 본은 사람을 죽이면서 농담을 하는 007 제임스 본드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늘 회의하고 고뇌하는 인물이죠.”그 회의와 고뇌는 한때 ‘살인기계’였지만 더 이상 함부로 사람을 해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차마 가혹한 짓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첩보물이라도 그와 같은 인간 본성의 선한 측면을 보여주는 데서 사람들이 공감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마음이 결국 인간의 사회와 문명을 지탱해주고 있는 요체일 것이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맹자가 말한 차마 다른 이에게 모진 짓을 하지 못하는 마음, ‘불인(不忍)’의 마음과도 통한다고 본다. 서양에서 온 이 영화배우의 말에서 맹자를 떠올리게 된 것은 뜻밖의 경험이었다.

그의 말이 더욱 인상적이었던 이유가 있다. 지난주부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그의 말과 대조됐기 때문이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의 일들을 보면서 드는 ‘정부가 참 모질다’는 생각이 그의 말을, 정치가 가져야 할 ‘본심(本心)’을 거듭 환기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의 타당성이나 필요성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자. 다만 이 급작스런 발표 이후 정부와 국민-그것이 설령 일부 국민, 일부 지역 주민과의 갈등이더라도-간에 빚어지고 있는 갈등 과정에서 정부가 보이는 ‘모진’태도와 마음가짐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지난 주말 성주를 찾은 총리 일행에게 달걀과 물병을 던져 6시간 이상 발이 묶인 사태에 대해 경찰이 어제 대대적인 수사 방침을 밝히고 나섰다. 불법행위를 엄정 사법처리할 방침이라면서 이를 ‘총리 억류사태’라고 규정했다. ‘성주 주민 반발’사태는 어느덧 ‘총리 억류’사태로 바뀌고 있다. 또 성주 군민의 봉변은 ‘총리와 정부의 봉변’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진짜 봉변을 당하는 것은 누구인가. 성주군민들이며 많은 국민들이 아닌가. 숱한 반론과 의문 제기들이 괴담으로, 국론분열로 몰리고 있는 성주 주민들이며 국민들 아닌가. 그 봉변은 군이 준비한 단 몇 분 간의 시연회로 인체 무해성이 입증됐다고 주장하는 과감함,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레이더 관련 교범이 레이더 전방 100~3600m 떨어진 장소를 ‘비통제인원 접근금지 구역(Uncontrolled Personnel Keep Out Zone)’으로 규정한 것을 굳이 ‘안전구역’으로 해석하는 국방부의 대범함, 오히려 위험지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원전 밀집지 인근인 점을 원전 방어용으로 선택된 것이라는 논리의 근거로 삼는 독창성 앞에 다른 주장은 괴담이며 국론분열이니 입을 다물라는 호통을 들어야 하는 봉변이다.

이런 모습들에서 정부의 오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무지를 본다. 정부의 일, ‘공(公)’의 업무의 본질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를 본다. 무지와 한 뿌리에서 나오는 어떤 신념을 본다. 그 신념은 “민중은 개, 돼지”라고 한 교육부 고위관료의 실언에 담긴 신념이기도 하다. 그 자신과 교육부가 말한 것처럼 그것이 취중 실언이었다고 해도, 또 실수와 실언은 마음속 잠재의식의 표출이라고 했던 프로이드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발언은 지속적인 자기 신념의 축적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지금 보여주듯 ‘주민들의 봉변’에서 ‘정부의 봉변’밖에 읽지 못하는 공직자들의 외눈박이와 자기확신 속에서 그런 신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체계적으로 축적되며 공고화되고 있는지 모른다.
사드(배치 결정과 그 이후) 사태야말로 ‘제2의 나향욱’, 다른 수많은 ‘나향욱’들이 있으며 길러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함’으로써 모든 죄를 대속한 나향욱 기획관이야말로 참으로 불운한 피해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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