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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노동 그림자]"서로가 서로의 가해자"…학대 악순환 고리 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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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노인과 돌봄노동자 상호 인권침해
정부 법적 제도 마련에 소홀
근로환경 개선 위한 개혁 필요성

전문가들은 노인과 돌봄노동자가 서로의 인권을 침해하는 관계에 놓인 것은 이미 예견된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돌봄노동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요양보호사에 대한 법적 제도 마련에 소홀했다.


요양보호사들의 전문성 결여는 노인 학대를 낳고, 이들 역시 노인에게 입은 피해로 스스로 요양업계를 떠나는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학대의 악순환을 단절하려면 정부 차원에서 돌봄노동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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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학대 막으려면…자격 요건 강화해야

요양업계 내부에서는 요양보호사들의 자격 조건을 현재 수준보다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여년 전에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요양보호사에게 한국의 5배가 넘는 교육 이수 시간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일본에서 노인 돌봄 영역에 종사하는 '개호복지사'의 자격 요건을 갖추려면 고등학교 졸업 후 전문학교에서 2년(1800시간) 이상 교육을 이수하거나 복지계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실습 시간도 한국과 비교해 눈에 띄게 길다. 일본 후생노동성에서 규정하는 요양보호사의 의무 실습시간은 총 450시간으로, 한국(80시간)의 5.6배다. 요양보호사의 전문성은 실습을 통해 얼마나 다양한 환자들을 접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환자들의 사례를 많이 접할수록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인들의 돌발행동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서다.

반면 한국의 경우 요양보호사 교육 시설이 자격증 취득 위주의 이론 교육에 치우쳐있다. 권태엽 노인복지중앙회 회장은 "요양보호사들은 실습시간에 고성을 지르거나 인형만 끌어안고 있는 환자 등 치매의 다양한 증상을 접하고 이들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를 배운다"며 "치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자격증 합격이 아닌 실습 위주의 교육에 중점을 둬야 요양보호사들이 당황하지 않고 현장에 잘 적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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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할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일본의 경우 요양보호사의 전문성에 따라 등급을 나눠 업무 권한에 차등을 둔다. 예컨대 '홈헬퍼'라 불리는 재가요양보호사의 경우 130시간의 교육을 받은 초임자 등급(2급 홈헬퍼)은 일반 현장 간병 업무만 맡을 수 있다. 현장을 지도할 수 있는 실무자 등급으로 승급하려면 450시간의 돌봄 교육 연수를 받아야만 한다.


승급에 성공하면 임금도 대폭 뛴다. 2022년 기준 실무자 등급의 평균 연봉은 397만엔, 한화로 약 3549만원으로 초임자 등급(360만엔)과 비교해 10.2% 더 높은 임금을 받는다. 돌봄노동자가 스스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당근을 제시한 셈이다.


보건복지부도 전문 인력 육성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오는 10월부터 요양보호사 승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50인 이상 시설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요양보호사에게 선임 역할을 부여하고 수급자 사례지원과 실습생 교육과 같은 추가 업무를 맡기겠다는 방침이다. 이들에는 월 15만원의 추가 수당이 주어진다.

◆근로환경 개선 필요…임금 개선과 쌍궤로 가야

근로환경 문제도 노인 학대를 막기 위해 정부가 필수로 개선해야 할 요건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고위험 환자에 한해서는 2인1조 근무 체계 도입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복지부는 2021년 돌봄노동자에 대한 안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고위험 환자에 한해 요양보호사의 2인1조 투입을 권고하고 있지만 민간 요양시설들은 재정 문제를 이유로 이 같은 매뉴얼을 따르지 않고 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고위험 노인에 한해 요양보호사를 2인1조로 파견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관리 기관인 공단은 고위험 환자들을 관찰해 분류하고 시설과 이용자를 중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장 배치 인력 수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요양보호사의 피로를 덜고 휴게 시간이 보장되려면 수급자 2.5명당 1명의 요양보호사를 배치하는 인력 배치 기준을 장기적으로 2대 1로까지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2021년 인력배치 기준을 2.5명당 1명에서 2.3명당 1명으로 강화했지만 업계 전문가는 일손 부족 해결을 실감할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권 회장은 "2021년 이래 법정 공휴일 수가 늘었다. 사실상 근로자들의 휴일 증가에 맞춰 부족한 인원만 채워진 격"이라며 "적은 인원이 노인을 돌보면 필연적으로 서비스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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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대안이 현실화하기에는 요양보호사 공급 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기준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 수는 약 252만명을 기록했지만 열악한 처우에 일자리 이탈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같은 기간 현장에서 종사하는 요양보호자 수는 60여만명을 기록해 전체의 24.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는 인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려면 처우 개선이 필수적으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돌봄노동자의 근로 환경 개선은 결국 임금 문제와 맞닿아 있는 셈이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요양보호사의 인력 수급 불균형과 양질의 서비스 제공이 되지 않는 부분은 대부분 저임금 문제에서 기인한다"며 "현재와 같이 시장에 맡겨버리면 요양보호사들의 임금이 최저임금 이상으로 올라가기 어려운 구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요양보호사 표준 임금제를 도입해 이들을 위한 일종의 임금 테이블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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