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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버텨야 한다면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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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파리만 날리는 삼겹살집이 있습니다. 지금의 동네로 이사 온 날 첫 외식을 했던 식당이라 애정을 가지고 지켜봤는데 손님이 아예 없거나 한두 테이블만 있는 경우가 태반이지요. 그런데 근처에 3층짜리 고깃집이 생기면서 손님이 더더욱 줄었습니다. 임대료도 적지 않을텐데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더군요. 그래서 저희 집에 손님이 8명 왔던 날, "장사가 잘 되는 집을 가야 고기가 신선하다"며 거부하는 손님들을 겨우 설득해서 그 삼겹살집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서빙하는 여직원의 불친절한 태도가 계속 신경쓰였습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반찬을 더 달라는 말에 뚱한 표정으로 짜증스러워 하는 그녀를 보자 제 일행들은 "이러니까 손님이 없지"하면서 제게 눈치를 주더군요. 자세히 보니 주방에서 일하는 분이 어머니이고, 서빙하는 사람이 딸이었습니다. 제 나이 또래인 딸의 얼굴에는 '도대체 내가 왜 이일을 해야하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지?'라는 불만과 좌절이 가득 느껴졌지요. 추측컨대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 폐업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인건비를 아끼려고 딸에게 SOS를 쳤겠지요. 딸이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였지만 그녀가 온몸으로 뿜어내는 부정적인 에너지 때문에 한번 왔던 손님이 더 이상 오지 않아 장사는 더 안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나의 선택이나 의지와 달리 강제적으로 주어진 상황이라면 더더욱 좌절스럽지요. 보증을 잘못 섰다가 그 빚을 대신 갚기도 하고 아픈 가족의 간병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꼭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하루하루 직장을 나가거나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렇게 힘겹게 일상을 버티며 살고 있다면 세 가지를 생각해 보세요.
첫 번째는 기한을 정해두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부터는 이 일에서 손을 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고시 공부를 한다면 '최대 3년만 도전하고 포기한다'는 룰을 세우는 것처럼요.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른다는 막연함이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드니까요. 이때 중요한 것은 약속한 기한이 끝나면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지를 충분히 상상하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 강연에 오신 한 어머니는 "저도 수영씨처럼 전세계를 누비며 살고 싶은데 초등학생 아이가 둘 있어서 집에만 갇혀 있어요"라고 말하시길래 "10년 후에 제가 아이들 보느라 정신 없을 때 어머님은 전세계를 돌아 다니면서 재밌게 사실거에요. 그러니까 그때 뭐할지 지금부터 충분히 준비해두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고3이라면 '수능 후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놓는다면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겠지요.

두 번째로는 매일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역할 플레이를 하는 것입니다. 서비스업이라면 "오늘은 왕 게임을 해볼까?"하고 생각하며 중세 시절의 왕궁에 와 있다고 상상하며 손님을 왕처럼 대해봅니다. 엑셀을 하루 종일 돌려야 한다면 엑셀을 게임이라 생각하며 살짝 무리하게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주어진 시간내에 일을 처리해보는 거죠.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영화나 드라마, 만화 속 캐릭터라면 어떻게 할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밌겠지요. 게임도 다른 이들과 같이 해야 재밌듯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도 누군가와 소통하고 함께 나누면 즐거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늘장아찌를 담근다면 '1시간 만에 만드는 마늘 장아찌!'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공유해 다른 이들과 그 과정을 소통을 하거나 '선착순 3명에게 마늘 장아찌 나눠줌!' 같은 글을 SNS에 올린다면 이를 핑계 삼아 반가운 지인들을 만날 수도 있지요.

세번째는 일상 속에서 소소한 모험과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늘 내리는 역보다 한 정거장 앞에 내려서 1-2킬로 정도 걸으며 낯선 동네를 발견한다거나 꽃 한송이를 나 자신에게 선물한다거나 출퇴근길에 팟캐스트를 듣는 등 새로운 경험을 일상에 선사하세요. 매일 스쿼트를 1개 늘리는 것처럼 운동이나 취미 생활을 조금씩 발전해 나가며 자신감을 늘리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 삶의 활력이 우리를 지탱해주니까요.
리듬댄스 세계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알려진 어느 커플의 주업은 구두닦이입니다. 똑바로 설수도 없는 1평 남짓한 작고 낮은 공간에서 부부가 쪼그려 앉아 하루종일 구두를 닦고 수선하지만 무대에서만큼은 영혼을 뿜어내며 열정을 불사르지요. 춤을 통해 얻는 활력이 워낙 커서 구두도 열정적으로 닦으시지 않을까요? 어쩔 수 없이 답답하고 재미없는 일들을 해야 한다고 우리 안의 열정과 끼를 죽이지 마세요. 그 녀석들을 최대한 끌어내서 우리의 일상을 조금씩 바꿔보아요.

김수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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