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여당이 단독 처리한 대표적인 법안이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했고, 김 의장은 이를 받아들여 이윤성 국회 부의장을 통해 기습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이 한데 뒤엉켜 온갖 폭력이 난무했고 쇠사슬로 국회 본회의장을 봉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미디어법 직권상정의 후유증은 상당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으며 장외투쟁에 나섰다. 한여름이었지만 여야 정국은 급속히 얼어붙었다.
18대 국회의원들은 '더 이상 싸우지 말자'는 취지로 임기 마무리 시점인 2012년 5월25일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켰다. 폭력이 폭력의 사슬을 끊은 견인차 역할을 한 셈인데, 아이러니하다.
19대 국회 들어 첫 의장 직권상정이 지난 2일 있었다. 국회법 개정 이후 처음이기도 하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가 숙려기간을 이유로 거부하자 86조2항을 근거로 여당이 직권상정을 제안했고 야당의 동의를 얻어 의장이 승인했다.
하지만 여당은 일주일 만에 다시 직권상정을 요청하고 나섰다. 경제활성화법안과 테러방지법안 등이 야당의 동의를 얻기 힘들자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한다'는 이유를 댔다.
집권여당으로서는 직권상정을 통해서라도 원하는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클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다시 직권상정 카드를 꺼내드는 모습을 보면서 우려가 앞섰다.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법 개정에서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한 것은 폐단에 대한 반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또 상임위 심사와 의결 절차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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