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이례적 '유연성', 협상 타결 이끌었다 = 남북이 합의해 공동 발표한 보도문을 보면, 양쪽 모두 군사적 긴장상황을 해소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협상에 임해왔음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22일 오후부터 진행된 무박 4일간 협상에서 "사과하라(김관진 국가안보실장)"→"확성기부터 꺼라(황병서 북한 총정치국장)"→"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선(先)조치할 게 있지 않느냐(김 실장)"→"지난 이야기는 하지 말라(김양건 북한 노동당 대남비서)"는 식의 말들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한 때 고성이 오가는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며 협상 타결은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양쪽 모두 협상장을 지켰다.
박 대통령도 25일 오전 논평에서 "재발방지를 약속한 것이 남북간에 신뢰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의미상으로 '재발방지'를 약속한 것이지만 직접적인 명시는 하지 않아 북한측의 명분을 세워준 것이다. 이 같은 유연한 협상태도로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민간교류 활성화, 당국회담 개최 등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靑 "정상회담 단계 아니다" 손사래 치지만… = 이번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특정 사건에 대한 일시적 갈등 봉합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관계개선의 물꼬를 터줬다는 점이다. 우선 남북은 공동보도문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한다"는 합의안을 제1항으로 적었다. 아울러 올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고 '앞으로 계속하기로' 했다. '민간교류 확대를 통한 민족 동질성 회복과 자연스런 통일 분위기 조성'이라는 박 대통령의 통일구상이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박 대통령이 큰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 조성이나 경원선 복원 등 남북교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데서 이번 합의의 성과를 체감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에 앞서 올 추석을 목표로 추진되는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간 화해분위기 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임기 반환점을 도는 박 대통령은 안보리스크 해소를 통해 올 하반기 '4대 부문 구조개혁'이란 핵심 국정과제에 몰두할 여유공간도 확보했다. 남북 관계개선 합의에 따른 호의적 여론 역시 경제활성화에 주력하려는 박 대통령의 행보에 상당한 힘을 실어줄 것으로 관측된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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