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찾은 한 대형마트 내 미샤 매장. '50% 할인'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음에도 매장 안은 텅텅 비었다. 경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시작된 할인행사가 과도해지면서 급기야 정가를 믿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10명 중 4명이 '정가를 못믿겠다'고 답했다.
원본보기 아이콘-할인행사에도 불구, 화장품업계 영업익 감소
-'제값내면 봉'이라는 인식만 만들어내
-외식업도 정가 개념 사라져…피자 한판에 3만원 정가 거품이라는 지적도
-호텔도 소셜커머스에 입점해 할인경쟁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 직장인 윤지희(32·여)씨는 필요한 화장품이 있어도 할인기간이 아니면 사지 않는다. 윤씨의 이러한 소비행태가 굳혀진 것은 화장품 로드숍 브랜드들이 매달 정기세일을 실시하면서부터다. 윤씨는 "오죽하면 정가주고 사면 바보라고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세일가격이 정가, 표시가격은 거품 같다"고 꼬집었다.
15일 찾은 한 대형마트 내 미샤 매장. '50% 할인'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음에도 매장 안은 텅텅 비었다. 미샤는 지난 2~15일 1400여종의 화장품을 최대 50% 할인 판매했다. 12월 한 달 중 절반이 세일기간인 셈이다. 매장 직원은 "세일을 자주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뎌져서인지 예전같이 팔리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 의 올 3분기 매출은 1085억원으로 지난해 1236억원에서 12.3% 감소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71억원에서 29억원으로 83.3% 뚝 떨어졌다. 당기순이익도 136억원에서 24억원으로 5분의 1토막이 났다. 미샤뿐만이 아니다. 중저가 브랜드숍 상위 5개사의 연중 할인 일수는 올해 250일을 기록, 2010년 54일보다 4배 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세일 정책에도 불구하고 네이처리퍼블릭과 더샘은 지난해 각각 44억원, 9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세일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외식업계에서는 연중 가격 할인 혹은 무제한 프로모션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횟수가 빈번해지면서 소비자들이 표시된 가격 그대로 값을 치르고 먹는 일은 드물어졌다. 정가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원본보기 아이콘콧대 높은 특급호텔들도 소셜커머스에서 객실, 레스토랑 이용권을 할인판매하고 있지만 반응은 예년보다 시원치 않다. 라마다호텔은 위메프에서 30만원대인 객실 패키지를 9만9000원에 내놨다. 이렇게까지 가격을 낮췄는데도 판매 수량은 60매에 불과하다. 라마다호텔송도는 2매 팔렸다. 세종호텔은 쿠팡에서 4만5000원짜리 스테이크 코스를 3만원대로 확 낮춰 팔고 있다. 이곳에서 티켓을 사면 호텔점심을 1만원대에도 먹을 수 있지만 200여매 판매되는 데 그쳤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할인 행사를 통해 업체들이 매출 증대를 꾀할 수 있었지만 최근 과도한 연중 세일로 소비자들이 할인된 가격을 정상가로 받아들이고 있어 정가 자체를 믿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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