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다 그랬다" 말꼬리 흐리고, "바깥일 하다보니" 몰랐다 하소연
함구해온 김 전(前) 총리 후보자는 2월 1일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평가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급전직하했다"며 혹독한 검증이 남긴 상흔을 아파했다. 당선인을 향한 비판엔 날을 세웠다.
돌아보면 총리 후보자가 검증의 벽 앞에 좌절한 건 처음이 아니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2000년 6월 이후 모두 4명의 총리 후보가 낙마했다.
2002년 7월 김대중 대통령은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을 총리 서리로 지명했지만, 곧 세 차례의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졌다. 장남의 이중국적 문제에 학력 허위기재 의혹까지 더해져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두 달 뒤 다시 세운 장대환 총리 서리(매일경제신문 사장)도 10여 건의 부동산 투기의혹과 자녀의 위장전입 의혹, 부인의 임대소득 탈루 논란 속에 입각의 꿈을 접는다.
지루하게 재방송되는 사회지도층의 '분식(粉飾)인생 드라마'는 근현대사와 무관하지 않다. 해방과 한국전쟁, 압축성장은 부의 재분배 과정을 왜곡했다. 배를 곯지 않게 하면 새치기해도 사회지도층이 될 수 있었던 시절, 현재의 주류 세력은 이런 시대에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 많다.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던 시절이었다.
일벌레가 아니고선 리그에 입성할 수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을 했다. 기획재정부 차관보를 지낸 구본진 트루벤 대표는 "딸아이가 대학에 가고난 뒤 문득 '아이가 꼬마에서 어른으로 뻥튀기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유모차 한 번을 밀어준 기억이 없다"고 했다.
남초 경쟁 사회에서 가장들은 집 밖으로 내몰렸다. 가정사를 돌보지 못하는 사이 거리낌없이 반칙이 이뤄졌다. 2010년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부인의 '쪽방촌 투기' 논란으로 공공의 적이 됐다. 본인은 몰랐던 일이라고 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이들은 이 과정을 착잡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인수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김용준·이동흡 인선 논란에서 보듯 과거 지도층은 사회적 책무에 대한 관심이 아주 부족했다"고 시인했다. 그는 "배운 사람, 사회적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그걸 어디에 써야 하는지, 처신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고 대개 사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 과정에서 편법이 횡행했고, 법질서 경시 사상이 팽배해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다보니 "부동산 투기와 위장 전입을 '나라고 못할 게 있느냐' '누굴 죽이거나 하는 범죄도 아니지 않느냐'하는 사회지도층의 낮은 윤리의식이 형성됐다"고 덧붙였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사회학자는 "개인적 성취를 사회적 기여로 착각하는 것도 사회지도층의 반칙이 횡행했던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지도층은 대개 본인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인데 본인의 성취를 위해 달려온 인생을 곧 애국이나 사회적 기여로 착각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했다. 평생 올곧게 살아왔다면서 언론검증에 얼굴을 붉힌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도 이런 예에 가깝다.
거듭된 진통이 사회 발전을 앞당길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가상준 교수는 "지도층 반열에 올라간 사람들이 살아온 시대와 그들을 지도자로 따를 사람들이 살아온 시대가 다르고, 그만큼 눈높이도 높아졌다"면서 "도덕성 문제로 낙마 사례가 쌓이고 검증 과정이 촘촘해지면, 공직에 나서려는 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과 주변을 단속해야 한다는 걸 온 국민이 인식하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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