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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사이즈는 여자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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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사이즈 통통녀에서 55사이즈 날씬녀가 된 K 이야기

[아시아경제 박지선 기자]

55사이즈는 여자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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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영상미를 보여준 왕가위 감독이 국내 여배우를 캐스팅해 영화 촬영하려던 계획이 있었다. 당시 여주인공으로 낙점된 여배우를 인터뷰 했을 때 일이다. 인터뷰 후 현장에 있던 스태프와 다 같이 저녁 먹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자 배우 매니저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다이어트 때문. 왕가위 감독은 그 여배우에게 44사이즈 몸을 주문했고, 다이어트 성공 후 영화 촬영을 시작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 배우는 살찐 것은 아니나 아주 가느다란 체격은 아니었다. 오후 5시 이후는 녹차만 마시며 다이어트를 했지만 그녀가 주인공인 왕가위 감독 영화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왕가위 감독 대표작 중 하나인<화양연화> 장만옥의 모습을 기억해보자. 중국 전통 의상 치파오를 입은 장만옥의 몸매는 영화 감상의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여자에게 옷 사이즈는 그냥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국내 여성복 사이즈 대략 44, 55 ,66, 77, 88로 구분된다. 44는 아주 마른 몸으로 아동복 코너의 가장 큰 사이즈 옷을 입어도 되는 체형이다. 다산여왕이라 불리는 코미디언 김지선씨가 44사이즈 옷을 입는다 해서 화제가 됐었다.

55사이즈는 약간 마른 체형, 66사이즈는 보통 체형의 여성에게 맞는 사이즈다. 옷의 디자인에 따라 55사이즈를 입는 여성이 66사이즈를 입을 때도 있다. 77, 88 사이즈는 흔히 부인복 사이즈로 뚱뚱한 몸을 일컫는 대명사로 쓰인다.

여성복 브랜드 중에서는 실제로는 66사이즈지만 라벨을 55로 붙여 여성들에게 ‘당신은 날씬해요 ‘라는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여성복 브랜드 판매사원 O씨는 실제 사이즈보다 더 작은 사이즈의 라벨을 붙였을 때 판매율이 급증하는 게 사실이라고 알려주었다.

기자는 아주 오랜만에 만난 K씨의 달라진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녀는 7개월 동안 12킬로그램을 감량한 것이다. 기자는 과거에 그녀가 뚱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약간 통통한 정도로 다이어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기자는 그녀의 변화가 흥미로웠다.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그녀는 성실히 대답해주었다. K의 사이즈 변화에는 이 시대의 사회상이 반영된 듯해 인터뷰 내용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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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글로벌 주얼리 브랜드 마케팅 디렉터이자 올해로 40세 생일을 맞은 여성이다.

백화점 숙녀복 매장에는 77사이즈 옷이 없다
부인복 코너를 가야만 쇼핑할 수 있었던 나.
55사이즈를 입는 여자는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길래 날씬한 거지?


평소 다이어트를 했었나?
▲다이어트는 40년 동안 내내 했다. 다이어트가 내 머리 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각종 유행하는 방식의 다이어트는 다해본 것 같다. 대학교 때 효소 다이어트를 하기도 하고 식초에 담근 콩을 먹는 덴마크식 다이어트를 한 적도 있었다.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은 평소처럼 생활하기가 어렵다. 덴마크식 다이어트를 할 때는 친구들과 여학생 휴게실에서 점심 먹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러고서는 덴마크식 다이어트 식단에 있는 재료만 이용해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그걸 싸갖고 다니며 먹었다. 그 희한한 맛이란!

찜질 원통 기계에 들어가 보기도 했으나 그것도 별로 성과가 없었다. 투자한 돈에 비해 효과가 너무 없다. 편한 다이어트는 없는 법이다.

좀 통통하고 뚱뚱하다고 생각한 후로는, 양껏 음식을 먹어본 적이 전혀 없다.


다이어트하라고 직접 권하는 사람이 있었나?

▲지압이나 마사지 받으러 가면 권유 받기는 했다. 그러나 살을 빼고 나니 주변에서도 ‘내가 말은 안 했지만 좀 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는 사람도 나타나긴 했다.

과거, 날씬한 모습의 여자를 부러워했던 적 있는가?
▲엄청 부러워했다. 부러워한 나머지 그들의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내 머리 속은 77녀일 때가 종종 있어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저처럼 뚱뚱한 사람들은…’이라며 얘기할 때가 있다.

77사이즈였을 때 제일 불편했던 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옷을 살 때다. 소위 백화점 내에는 77사이즈가 나오는 브랜드가 거의 없다, 명품 브랜드 특히. 돈도 많고 날씬한 사람들은 전생에 얼마나 덕을 쌓았을까 하는 생각도 무수히 했다. 제일 평화 시장에 가야만 77사이즈를 살 수 있을 때가 많았고, 돈을 절약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말도 안되는 위안을 하기도 했다.

갤러리아 백화점! 두 개의 건물 전체에 77사이즈 찾기는 보물찾기처럼 어렵다. 프리미엄진! 27 사이즈까지밖에 없다. 28부터는 돈이 있어도 프리미엄진은 살 수가 없다.

또한 대인 관계에서도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뚱뚱한 여자는 존중받는 대열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특히 영업을 할 때는 ‘상대방이 나를 좋지 않게 보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출발하니 자신감 있는 태도가 잘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77 사이즈로 쇼핑가면 점원 반응이 어땠었나?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일단 스캔에 들어간다. 물어보는 것에 대답한 후, 대충 정리해서 보내려는 듯한 느낌도 받았고(이건 자격지심도 포함된 것 같지만), ‘아유 66사이즈같이 보이시는데요, 뭘’하며 마무리까지 잘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안정적인 55사이즈가 된 후 느낀 점은 무엇인가?
▲아직 안정적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나도 이제 정상인이 되었다는 점은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다.

하여튼 이 사회는 뚱뚱한 사람들이 살기에는 별로 편치 않다. 이제 적어도 사이즈 때문에 주눅들 일은 없어 마음이 간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백화점에 옷을 구경하러 가면 확실히 내게 옷을 입혀 보려 하고 팔아보려 더욱 노력한다. 내게 더욱 많은 찬사와 더욱 적극적인 권유! 전에는 환영받지 못한 고객에서 이젠 환영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더 뚱뚱한 사람들도 있다. 77, 88 사이즈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77들에게. 사실 내가 77일 때는 모두 싫었다. 희귀종이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지금은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그들은 전혀 흉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 따라 정말 하는 행동이나 얼굴 등에 의해 예쁜 사람들도 많다.

88사이즈를 입는다면, 살을 좀 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솔직히 좀 흉하고 게을러 보인다.

다이어트 후 가족의 반응은?
▲일단 아이들이 내 등을 밟으며 안마를 해 줄 때 이젠 뼈밖에 안 남아서 이상하다고 한다. 남편은 워낙 통통한 사람을 좋아해서 나랑 결혼했기에 내가 너무 불쌍해 보인다 한다. 다이어트 초기에는 사실 얼굴 피부도 늘어져서 좀 늙어 보이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내 머리 속이 아직 완벽한 55녀가 아니듯이 가족들도 아직 낯설어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다이어트를 할 생각인가?
▲그렇다 지금 이 상태를 지키고 싶다. 건강에도 좋고, 여러 가지 면에서 플러스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가끔 좀 마음이 무거워진다. 예쁘고 날씬한 것만이 대접받는 듯한 세상인 것 같아서. 나도 그 속에 함몰되어 있으면서도 말이다.




박지선 기자 sun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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