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모녀측' 지지로 판세 뒤집히자 '반감'
"국민 돈으로 운영하는 기관이 개인주주와 대립"
국민연금 결정 이후 '형제측'으로 막판 의결권 결집
의결권 대행 플랫폼 '액트'를 운영하는 이상목 컨두잇 대표는 2일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3월28일) 결과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주총 2일 전 대주주 국민연금의 모녀 측(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OCI 통합 찬성파) 지지로 판이 뒤집히자 소액주주가 형제 측(임종윤·종훈 사장·OCI 통합 반대파)으로 결집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76일 동안 극적으로 흘러간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분쟁 당시 소액주주의 막전막후를 지켜본 인물이다. 이 대표는 "접근 가능한 소액주주가 전체 지분 기준 7% 남짓이었다"며 "액트를 통해서 모인 1% 중반 지분을 포함해 온·오프라인 의결권 수거 등을 통해 형제 측에 표를 던지기로 한 의결권이 5%가 넘는데, 반대(모녀 측)는 1%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으로는 소액주주 80%가량이 형제 편에 섰던 셈이다.
처음엔 의견 나누려고 모여…"나중엔 모녀 편 한 명도 없었다"
액트는 의견을 한데 모으기 힘든 소액주주가 결집하는 데 공론장을 제공하며, 전자위임장을 통해 의결권 위임이 가능한 플랫폼이다. 이 대표에 따르면 한미 소액주주가 처음부터 '형제 측' 지지로 모인 것은 아니었다. OCI그룹과의 통합 소식이 들려오자 통합이 소액주주에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 액트로 모였다. 이 대표는 "통합을 반대하는 의견으로 수렴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통합 반대파인) 형제 측 지지로 흘러간 것"이라고 했다.
소액주주의 최대 관심은 '주가'였다. OCI 통합으로 한미사이언스가 '중간 지주사'가 되면 과거 사례를 봤을 때 주가가 '반토막' 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했다. 게다가 지분 양도 조건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전혀 없다는 점이 알려지며 '졸속 매각'이라는 반발도 커졌다. 경영진에 대한 불만과 전문성에 대한 의심도 갈수록 고조됐다. "박물관 하던 분과 음대 출신이 어려운 제약 산업을 이끌어나갈 수 있느냐"라는 말도 나왔다. 한미사진미술관을 운영하다 2020년 창업주 사후 이후 경영권 전면에 등장한 송영숙 회장, 음악을 전공한 임주현 부회장을 겨냥한 것이다. 반면 생화학을 전공하고 베이징한미를 이끌었던 임종윤 전 사장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은 커졌다. 시간이 흐르자 모녀편을 드는 소액주주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주총 현장에서 결과가 나온 이후 한 소액주주는 "우리도 뭉치면 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국민의 돈으로 운영하는 기관이 국민과 반대되는 결정"
소액주주의 몰표를 등에 업은 형제 측은 약 52%의 찬성표를 얻으며 이사회 장악에 성공했다. 여기에 모녀 측 특수관계인으로 분류된 우호 지분 중 일부 반란표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만 놓고 보면 국민연금과 소액주주의 의견이 갈렸다. 개인 최대 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도 형제 측을 지지했던 점을 고려하면 특수관계인을 제외한 주주는 모두 '형제 측'으로 대동단결한 셈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 돈으로 운영하는 국민연금이 국민(개인주주)과 반대되는 결정을 한 것이 맞느냐"라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의 명분만 보면 소액주주와 다르지 않았다. 결정 당시 "장기적인 가치 제고에 현 이사회(모녀 측)가 더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 배경에 대해 통상적으로 한 문장 내외로 설명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박주근 대표는 "국민연금은 '캐스팅 보트'가 되면 현 경영진에 기계적으로 찬성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2달여간 심사숙고를 거쳐 주주의 가치를 위해 판단을 내린 소액주주와 비교해보면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안이한 모습이며, 적어도 이 정도로 사회적 이슈와 파급력이 큰 결정에 대해서는 의결권 결정 이유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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