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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치인]"버티는 것도 용기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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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총학생회장 지내고 경북 의성 낙향 농부의 삶
경북 지역에서 민주당 깃발로 기초·광역 의원 당선
"승자독식 깨야,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필요"

삶의 빛깔은 다채롭다. 누군가는 검정이고 누군가는 노랑이다. 다름은 있지만, 높낮이는 없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정당은 달라도 나름의 색깔과 스토리가 있다. 이들은 비판도 많이 받지만, 사회를 바꾸겠다는 비전을 품고 인내하며 나아간다. 그 가운데 한 명인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을 만났다.


이화여대 경제학과 84학번인 임 위원장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이었다. 졸업 후 그는 여느 '386 운동권' 출신들과 달리 경북 의성으로 내려가 농부가 됐다. 28세 때였다. 주위에서는 ‘이곳에 얼마나 오래 살겠어’라고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두 사내아이를 키우며 이제 어엿한 '의성 사람'이 됐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이 키우던 소들을 먹이기 위해 사료를 옮기고 있다. / 사진=나주석 기자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이 키우던 소들을 먹이기 위해 사료를 옮기고 있다. / 사진=나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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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빚, 삶을 바꿨다

"남편(김현권 전 국회의원)은 1991년에, 저는 1992년에 내려왔어요. 당시에는 많이들 공장으로 가고, 농촌으로 갔는데 저는 늦게 간 편이에요. 1988년 졸업할 때쯤에는 수배 중이었는데 조사받고 사건 다 마무리된 뒤에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에서 3년간 있었죠.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왜 하필 농촌이었을까.


"마음의 빚 같은 게 있었어요. 농촌에서 자라지는 않았는데, 대학교 1학년 농활 갔을 때 담배밭에서 일했어요. 땡볕인데다 담뱃잎이 제 키를 넘어서고, 잎은 어찌나 큰지, 바람은 안 통하고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 저는 일주일 정도만 하고 집에 가면 되는데, 뭔가 비겁하다고 생각했어요. 말로는 그분들에게 ‘이농을 하면 안 된다’, ‘농촌이 얼마나 중요하냐’라고 하는데, 나 자신은 이율배반적이었죠. 이 마음의 빚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요. 현장에 가게 되면 공장이나 이런 데 말고 농촌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말을 해놓고 돌아서서 아닌 척하는 게 안 되더라고요."

임 위원장은 남편의 고향인 경북 의성으로 이사 온 뒤 줄곧 이곳에서 살았다. ‘밥할래 일할래’ 물으면 일하겠다던 씩씩한 새색시는 이제 들판에 나가기만 해도 찬거리를 마련할 수 있는 베테랑이 됐다. 정치를 하게 된 것은 우연, 필연 같은 일들이 겹친 결과였다. 노무현이라는 바람이 경북 의성에 찾아온 뒤, 부부의 삶이 바뀌었다.


"정치를 할 거라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농사지어 먹고 살기가 힘들었었죠. 그런데 남편이 2002년도에 노사모 활동을 했어요. 국민 경선 참여 경선제가 도입되었을 때 노무현을 후보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막 움직였잖아요. 그때 남편이 움직인 거예요. 그런데 위에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었어요.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오겠다는 분들이 노무현 개혁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남편이 출마 결심을 하고 선거에 나갔죠."


남편이 2004년 총선에 출마하면서 임 위원장도 정치판에 뛰어들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 때 선거법이 바뀌면서 선거 운동 규정들이 까다로워졌어요. 유세하는 사람이나 선거 연설원은 전날 등록을 해야 유세차에 오를 수 있었는데, 도통 연설할 사람을 구하지 못했어요. 선거 치르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지역 내 민주당에 대한) 거부감이 큰지 몰랐죠. 결국 연설원을 구하지 못해 제가 연설원으로 나섰어요."


임 위원장이 오래간만에 연단에 오른 보람도 없이 남편 김현권은 18.7%를 얻어 낙선했다. 김 전 의원은 2016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했다.


"엄마 밥이 맛이 없어."


초등학교 어머니 회장을 하던 임 위원장은 학교 급식을 먹은 아이들의 푸념을 듣는 일이 많았다. 맛이 없다는 것이다. "의성 주변 안계평야에서 나오는 쌀이 얼마나 맛있는데, 또 집에서 익다 못해 물러가는 자두는 얼마나 달콤한데…. 아이들 얘기를 듣다 보니 급식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선거제도가 바뀌었고, 정치에 나설 이유도 생겼다.


"그때 우리 지역에 굉장히 괜찮은 여성이 계셨어요. 어렵게 비례대표 후보로 모셨는데 비례대표 후보는 선거 운동을 하는 방법이 본인 이름으로 선거 운동하는 게 아니라 당으로 선거 운동을 하잖아요. 제 입장에서는 이분을 당선시키고 싶은 거예요. 선거운동을 혼자 하게 둘 수 없어서 지역구 후보로 등록했어요. 게다가 아이들 급식 이야기도 하던 때라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기도 했었죠."


밀었던 비례대표 후보는 떨어졌지만, 임 위원장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경북 의성군 가 지역에서 군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2010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경북 지역 기초의회에서 민주당 의원이 당선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선에 성공한 것은 임 위원장이 처음이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이 경북 안동 도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서 있다. / 사진=나주석 기자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이 경북 안동 도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서 있다. / 사진=나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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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버티는 게 우리에겐 위로" 듣고 힘내

"의정 활동하며 눈물 흘린 것을 합하면 호수는 안 되도 샘 하나는 될 거예요. 정치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자존심을 다치는 거예요. 자존심을 내려놔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됐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머리를 할 때면 의성의 미장원을 갔고, 우유를 한 봉지 사도 의성의 마트를 가서 장 보고, 의성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늘 보던 사람들이 선거가 딱 됐는데 반응이 아닌 거예요. 거부감이 이렇게 크다고 느끼기도 했죠."


하지만 그를 응원하는 이들이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는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석패한 뒤 농사일에 전념했던 그에게 한 주민이 말을 건넸다.


"당신은 (지방 의회에서 외롭게) 버티고 있느라 힘들었겠지만, 당신이 버텨주는 게 우리에게는 위로였어요."


임 위원장은 "사람들은 의원이 되면 누린다, 즐긴다고 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해주니까 눈물이 쏟아졌다"고 기억했다. 이후 한동안 그는 카톡 프로필을 ‘버티는 것도 용기다’로 바꿨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그는 경북 도의회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경북 지역 언론들은 당시 임 위원장의 승리를 전하며 ‘민주당 경북도의원 당선은 1995년 지방선거 경북도의원 선거에서 류상기 전 경북도의원(영양) 이후 23년 만이며, 여성 민주당 도의원으로는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도의원 생활을 하며 의성군수 출마를 고민했던 그에게 당에서 깜짝 놀랄 전화가 왔다. 제8회 지방선거에서 경북도지사 후보로 전략공천한다는 것이었다.


도지사 선거 결과는 시작하기 전부터 예측 가능했다. 정권교체 직후 치르는 지방선거, 그것도 집권당의 텃밭으로 불리는 경북 지역이었기에 멋진 패배 외에는 꿈꿀 수 없었다. 임 위원장에게 허락된 기적은 22.04%의 득표율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얻었다고 사람들이 얘기하는데 사실은 좀 많이 미안했어요. 성적이 그래도 조금 더 좋았어야지. (같은 패배라도) 25%나 30%와 22%는 차이가 커요.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희망의 메시지 크기가 달라져요. 그런 면에서 저는 되게 미안한 거죠. 조금 더 큰 메시지를 줬으면 좋았을 텐데."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이 경북 안동 도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서 있다. / 사진 = 나주석 기자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이 경북 안동 도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서 있다. / 사진 = 나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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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임 위원장은 선거제도 개혁에 전념하고 있다. 호남에도 국민의힘 지지자가 있고, 영남에도 민주당 지지자가 있지만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으면 이기는 승자독식의 선거 구도를 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길이 정당 간 정책과 정견을 대결을 불러와, 보다 나은 정치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경북에서 민주당 깃발을 들면서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깨달은 점이다.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다고 봐요. 저는 원래 대선거구제 지지자입니다. 모든 게 다 수도권에 집중된 이 상황에서 소선거구제는 의미가 없다고 보거든요. 하지만 논의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면 비례대표제는 권역별로 했으면 좋겠어요. 소선거구제가 인구 대표성이라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역 대표성이잖아요. 소선거구제로 꼽히는 지역구 의원과 비례의석수의 비율을 조정해 최소 2:1이라도 됐으면 좋겠어요."





의성·안동=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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