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의 배신]“페루 원산지체계 미비”…책임은 수입기업이?

기재부, 지난해 중남미 '지식공유 컨퍼런스'
한국도 "페루수출업자, 원산지 규칙 잘 몰라"
이에 한국이 직접 페루 원산지 개선 작업 해
원산지체계 미비, 자료제출은 "과도하지 않다"

한국 정부가 페루의 원산지 증명 시스템이 미비했던 점을 알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민간기업이 원산지를 증명하기 불가능한 환경이었지만, 관세청은 수입기업이 알아서 해야 했을 일이라는 입장이다.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상 원산지 증빙 의무는 ‘수입자’에 있으니, 논란이 된 페루산 녹두도 수입기업이 증빙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9월 6일 서울 동대문구 글로벌지식협력단지(GKEDC)에서 열린 한-중남미 수교 60주년 기념 지식공유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5일 아시아경제 취재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6일 ‘한-중남미 수교 60주년 기념 지식공유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관세청의 주무부처인 기재부 측 인사들과 주한페루대사관 경제참사관 등이 참석했다. 이날 발제 주제는 한-중남미 디지털 시스템 구축 및 인프라 접근성 확대로 ‘페루 원산지 증명·관세시스템 구축’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발표자였던 송경은 당시 국제원산지정보원 실장이 작성한 자료에는 “페루의 수출업자들은 원산지 규칙에 익숙하지 않다”며 “수출할 준비가 되면 원산지 증명서 발급을 위한 접근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뭘 준수해야 할지 모른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밖에도 정부 관계자들은 “페루에 방문해보니 원산지 관리시스템이 부족했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에 정부도 페루의 원산지 시스템 개선 작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페루 측 인사에게 ‘구체적이고 체계화된 기술과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페루 정부도 원활한 관계가 기대된다는 답변을 했다. 지난달 16일에는 방기선 1차관 주재로 열린 ‘지식공유사업(KSP) 추진협의회’에서 페루의 원산지 증명 관세시스템 구축사업을 우수사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페루를 지원해줘야 할 만큼 원산지 체계가 미비한 나라지만, 관세청은 그래도 수입기업이 원산지 증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FTA 규정에 수입기업의 의무로 적혀있다는 게 근거다. 페루기업과 농민에게 요구한 은행 계좌내역, 회계 장부, 세무 보고서, 재배명세가 사실상 받아내기 불가능하다는 지적에도, 무리한 수준이 아니라며 제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추징관세로 607.5%를 토해내야 하는데 대다수 수입기업은 문을 닫아야 한다.

수입기업들은 관세청이 페루의 현실을 알면서도 문구 해석에 집착한 결정을 내린다고 토로한다. 한 수입기업 관계자는 “한국보다 관세장벽이 훨씬 높은 유럽에서도 페루 등 중남미의 곡물을 원활히 수입하고 있다”면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자 행정 편의주의”라고 비판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