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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살인’으로 본 가스라이팅, 판결문 10건을 분석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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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법원 양형 이유에 적시
3년간 6건 가스라이팅 범죄 인정
'계곡살인' 1심서 인정되지 않아

지난해부터 법원에서 가스라이팅(Gaslighting·심리적 지배) 기반 범죄를 양형 이유에 적시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범죄는 살인 등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법관 재량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지난해부터 법원에서 가스라이팅(Gaslighting·심리적 지배) 기반 범죄를 양형 이유에 적시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범죄는 살인 등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법관 재량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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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규민 기자] 지난 2월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이상주 부장판사)는 고교 동창생을 상대로 사기, 유사 강간, 공갈, 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A씨(21)에 대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7월 초순께 피해자 B씨(21)에게 “너의 컴퓨터와 휴대폰이 해킹당하고 있으니 돈을 주면 해킹에 대해 잘 아는 친구에게 이야기해 보호해주겠다”는 취지로 거짓말해 95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이후 약속에 늦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폭행하거나 지난해 4월부터 협박을 통한 유사 강간도 총 6회에 걸쳐 한 혐의도 받는다.


재판부는 “A씨가 자신보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취약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피해자의 심리를 지배한 상황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이른바 ‘가스라이팅 범죄’에 해당한다), B씨가 극도의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등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부터 법원에서 가스라이팅(Gaslighting·심리적 지배) 기반 범죄를 양형 이유에 적시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범죄는 살인 등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법관 재량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가스라이팅 범죄 판결 잇따라...‘계곡 살인’은 불인정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3년간 대법원판결 열람 서비스에서 ‘가스라이팅’이 적힌 판결문은 총 10건이다. 지난해 6월부터 ‘가스라이팅’이 판결문에 적시되기 시작했으며 이중 가스라이팅 기반 범죄는 6건이다. 6건 중 절반은 연인이거나 연인이었던 관계에서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교도소 출소 후 6년간 교제하던 피해자에게 전화해 “지금 만나는 남자를 죽여버리겠다” 등을 말하며 협박한 혐의를 받는 C씨에 대해 징역 1년이 선고됐다. 마찬가지로 의정부지법 형사2단독 신동웅 판사는 “결별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죄책감을 심어줘 심리를 조종하는 소위 ‘가스라이팅’과 피해자와 그 주변인들에게 위해를 가할 듯한 협박을 함으로써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고 판시했다.

검찰이 가스라이팅에 의한 작위 살인(직접 살인)을 주장해 관심을 모았던 ‘계곡 살인 사건’의 경우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천지법 형사15부(이규훈 부장판사)는 피해자가 이은해씨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심리적 지배 또는 통제 상태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물에 잠긴 피해자에 대한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점 ▲이전에 두 차례 피해자 살해 시도를 한 점 ▲계획 범행 등을 이유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간접 살인)을 유죄로 인정해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했다.


가스라이팅 범죄는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반면 죄형법정주의에 반할 수 있어 법원과 검찰의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가스라이팅 범죄는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반면 죄형법정주의에 반할 수 있어 법원과 검찰의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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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근거 미미...법제화 필요” vs "죄형법정주의 반해“

가스라이팅이란 가해자가 타인의 심리와 상황을 조작해 피해자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고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뜻한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를 토대로 피해자에게 반복적인 학대 등을 저지른다. 피해자는 외부로부터 고립되면서 오히려 가해자에게 의존하게 되고 신체적 폭력, 사기,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법관 재량에 맡기기보다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스라이팅 및 스토킹의 심리적 기제에 관한 비교’에서 “정서적 학대가 주인 가스라이팅의 경우 현재 데이트폭력 등 관련 법률 제정돼 있지 않아 범죄 성립 어렵고 처벌 근거가 미비하다”며 “친밀 관계에서 발생하는 가스라이팅을 가정폭력으로 간주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반면 심리적 현상을 구체화하기 어렵고 가스라이팅을 법제화할 경우 죄형법정주의에 반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스라이팅을 해서 어떠한 행위를 시킨 경우 처벌하겠다는 식으로 법제화된다면 구성요건 명확성에 반할 수 있다”며 “(가스라이팅 판단에 대해) 검찰이 최대한 입증하려 노력하고 판사의 재량으로 남겨놔야 한다”고 말했다.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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