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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이젠 관치금융이 아니라 정치금융 시대가 됐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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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관치금융은 쉽게 말하면 이런 거다. 정부가 은행의 지배구조나 의사결정에 대해 간섭하는 것. 언뜻 연상되는 건 독재정권 시절의 경제관료다. 여기서 잠깐, 독재 이미지는 걷어내고 관치라는 단어만 보자. 시장은 완전무결한 존재일까? 정부 통제를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공무원들은 없어져도 무방한 존재일 것이다. ‘잘못된 관치’는 있어도 ‘나쁜 관치’는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요즘처럼 자영업자 등 상당수 국민들이 힘들어 할 때는 정치권에서 인기를 얻으려 금융질서를 뒤흔드는 ‘정치금융’을 경계해야 한다. 20대 대선 운동 기간 당시 은행 사람들은 여야의 금융 관련 공약을 보고 혀를 차며 이런 말을 했다. "공무원들이 청와대, 국회 눈치만 보잖아요. 이젠 관치금융이 아니라 정치금융 시대가 됐더라고요."

그중 하나가 윤석열 당선인이 내놓은 청년도약계좌다. 금융위원회 내부에서 "이건 보건복지부에서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복지정책 성격이 강하다. 은행들도 "지금까지 이런 적금은 없었다"며 곤란해한다. 청년 1인당 매달 70만원씩 모아 1억원을 만들게 하자는 건데, 최하위 소득구간 가입자에겐 정부가 월 40만원까지 세금으로 보태준다.


목돈 마련을 돕는다는 취지지만 뒤집어보면 일반적인 금융상품과 거리가 멀다. 만기 10년(보통 적금 만기는 2년)에 단리보다 이자가 많이 불어나는 복리로 금리 3.5%가 적용된다.(현재 적금 금리는 높아봤자 2%대고 복리는 단리보다 낮다) 은행들이 1인당 주는 이자만 1300만원이 넘는다. 세대 간, 계층 간, 금융소비자 간 형평성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다.


이제 실현 가능성이 없어지긴 했지만 이재명 후보의 청년대출은 수위가 더 높았다. 1000만원씩 초저금리로 10년간 빌려주겠다는 건데 만 19~34세 인구는 1045만명. 단순 계산해 최대 104조5000억원까지 대출금으로 나갈 수 있다. 은행은 상환 능력이 있건 없건 무조건 빌려줘야 한다.

청년들이 못 갚으면 정부(보증기관)에서 대신 갚아준다고 했지만, 재정(보증기관 자본확충 자금)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돈이 아니다. 허투루 쓰지 말아야 한다. 13세기에 유대계 디아스포라들이 갖은 핍박 속에서 대금업을 할 때도 이런 식으로는 안 했다.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상대하지 않았다. 은행 태동기에도 대출심사와 상환능력에 따른 이자를 매기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이 두 가지 공약만 봐도 인기 영합을 위한 정치금융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공무원들도 정치인들의 명만 받들다 보니 시장원리를 무시한 공약이 추진되는 것이다. 요즘 같은 때는 행정부도 아닌 건 안 된다고 버티는 근성이라도 보이고, 은행 단속도 잘하는 제대로 된 관치금융이 필요하다.


1998년 미국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라는 거대 헤지펀드가 부도 직전에 몰렸던 때, 다급해진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주요 채권은행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을 한 방에 몰아넣었다. "부채를 출자로 전환해서 해결할 때까지 여기서 나오지 말라"며 문을 닫아버렸다. 결국 14개 은행들은 36억5000만달러를 긴급 지원해 금융시장이 고비를 겨우 넘겼다. 그린스펀이 미국 법에도 없는 행동을 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금융위기는 순식간에 산업 전체로 번지기 때문이었다. 시장경제의 상징인 미국에서도 관치금융은 이런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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