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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위계에 의한 간음죄’ 성립범위 대폭 확대…종래 판례 만장일치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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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 착오, 부지는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것 아니어도 돼”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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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미성년자나 정신장애자 등 심신미약자를 속여 간음했을 때 성립하는 ‘미성년자 등 간음죄’의 처벌 범위가 대폭 확대됐다.


종래 대법원은 ‘위계로 간음했다’는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 피해자의 오인이나 착각, 부지가 반드시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것일 때만 범죄 성립을 인정했지만, 간음행위 자체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없는 다른 조건에 대한 착오를 야기한 경우에도 처벌이 가능해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7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 등 간음) 혐의로 기소된 A씨(36)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속아 피고인과 성관계를 한 것이고, 피해자가 오인한 상황은 간음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된 것으로, 이를 자발적이고 진지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전제했다.


이어 재판부는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며 “원심의 판단은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또 재판부는 “이와 달리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일으킨 오인, 착각, 부지는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 착각, 부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 종래의 대법원 판례를 모두 변경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위계적 언동의 내용 중 피해자가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룰 만한 사정이 포함돼 있어 피해자의 자발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없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본 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이어 “간음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위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범행 상황에 놓인 피해자의 입장과 관점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A씨는 2014년 7월 중순께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신이 고등학교 2학년인 김모군인 것처럼 속여 미성년자인 B(14)양에게 접근, 가까워졌다.


B양과 사귀기로 한 A씨는 같은 해 8월 B양에게 “나를 좋아해서 스토킹하는 여성이 있는데, 나에게 집착을 해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 우리 그냥 헤어질까?”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스토킹하는 여성을 떼어내려면 자신의 선배와 성관계하면 된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김군(실제 A씨)과 헤어질까봐 두려웠던 B양은 A씨의 제안을 승낙했고, A씨는 마치 자신이 김군이 얘기한 선배인 것처럼 속여 B양과 성관계를 가졌다.


범행사실이 드러난 A씨를 검찰은 청소년성보호법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1심 재판부는 A씨의 위력 행사가 없었다고 판단,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2심에서 검찰은 ‘위계에 의한 간음죄’로 공소장을 변경했지만 역시 무죄가 선고됐다. A씨가 성관계 자체에 대해서 B양을 속였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 같은 2심의 결론은 종래 대법원의 입장에 따른 것이었다.


형법 제302조(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는 ‘미성년자 또는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종래 형법 제302조의 위계에 의한 간음죄 성립을 위해서는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일으킨 오인, 착각, 부지가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일 것을 요구했다.


때문에 소개팅을 해준다고 미성년자를 속여 모텔로 유인하거나, 실제는 돈을 지불할 의사가 없으면서 성교의 대가로 돈을 주겠다고 속이고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한 경우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이번 판례 변경으로 미성년자나 심신미약자를 상대로 한 위계에 의한 간음죄의 성립범위가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대법원은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오인, 착각, 부지의 대상을 간음행위 자체 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는 다른 조건에 한정하지 않고 간음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대상으로 확정한 판결”이라고 이번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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