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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신용본위제의 생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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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1971년 금본위제 폐지는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금본위제는 통화 가치와 그에 해당하는 금(金)의 가치를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세계 통화정책의 근간이었다. 언제든 화폐를 '진짜' 가치인 금과 바꿀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안정적인 통화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하지만 금 규모가 한정적이어서 늘어나는 경제수요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라는 한계도 동시에 갖고 있었다.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에는 신용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바야흐로 신용이 '실물(금)'을 대체하는 신용본위 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 전세계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던 출발점도 바로 여기다.

금본위제 폐지 이후 경제는 급팽창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경제데이터(FRED)에 따르면 금본위제 폐지 직전인 1971년까지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추이곡선은 거의 수평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곡선은 급상승하는 궤적을 그렸다. 미국의 GDP는 1971년 1조1648억달러에서 지난해에는 21조4271억달러로, 20배 이상 성장했다. 1930년 대비 1970년 GDP가 11배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금본위제 폐지 후 미국의 GDP 성장속도는 현저히 빨라진 셈이다. 막대한 달러 유통 효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함께 신용경제의 부작용 역시 덩달아 커졌다. 필요할 때마다 돈을 찍다보니 경제주체들이 빚에 무감각해졌다. 빚이 늘어갈수록 경제시스템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신용경제의 작동원리는 돈이 원활히 순환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는데, 그 고리가 하나라도 어긋나면 전체 시스템이 위험에 빠지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었다. 미국 국제금융연구소 관계자는 전세계 경제상황을 '폭발하지 않는 폭탄 위에 앉아 있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전세계 확산은 이런 불안심리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생산과 소비의 추락으로 '돈이 원활히 돌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가 나오자 주가는 폭락하고 달러 러시 현상은 극에 달했다. 경제주체로 공포가 확산된 결과다.

해법은 현금 살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결국 한번도 꺼내지 않은 무제한 양적완화 카드를 내밀었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이 동참한 상태다. 신용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막대한 현금을 쏟아붓는 것이다.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동안 '헬리콥터 머니'로 대표되는 현금살포가 대증요법임을 익히 알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적어도 5년 이상 이어진 양적완화 효과는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저금리에 취해 막대한 자금을 끌어다 쓴 기업들은 또 다시 부채를 갚지 못하는 한계상황에 직면한 사례를 목격해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사채에 경고등이 켜지자 신용평가사들은 기업 신용등급 끌어내리느라 여념이 없다. 위기를 빚으로 땜질한 대가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2008년 신용위기의 윤곽을 따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사태에 대응하는 세계 각국의 고강도 정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조치를 능가한다. 전염병이 수그러들면 수혈된 자금으로 세계 경제는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하지만 위기가 더 이상 없을다고 단정할 순 없다. 대책 수위가 높을수록 다음 위기의 강도 역시 셀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사태 이후 신용본위제 개선이 시급해졌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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