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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비용증가 < 보조금'이라는 부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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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바이어는 납기 잘 지키는 회사를 좋아한다. 실력이나 품질이 비슷하면 제 때 물건 대주는 회사와 손을 잡는다. 중소기업은 이런 '자격'을 두고 경쟁하는 수가 많다. 중소기업은 광고나 홍보에 쓸 돈이 별로 없다. TV나 신문광고는 언감생심이다. 흔히 '지라시'라고 부르는 광고전단은 내키질 않는다. 자칫하면 제품에 대한 이미지가 망가질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소기업에게 마케팅이란 납기 잘 지키는 것, 납기 잘 지키는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뿐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을이고 바이어에도 을이다. 마케팅은 이런 이중고의 다른 표현이다. 이걸 못 하면 끝이다.
지난 달에 만난 중소 화장품 업체 S사 김모 대표가 들려준 얘기는 그래서 심각하다. 김 대표는 "사업하는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씩 납기를 조금씩 늦추고 있다"면서 "저도 조정을 해봐야할 것 같다"고 했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다. 김 대표가 내뱉은 하소연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자리안정자금이요? 취지는 알아요. 그런데 최저임금에 걸리는 사람들만이 문제는 아니잖아요. '나는 왜 안 올려주느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어요. 줄줄이 다 올려줘야 하는데, 중간관리자 이상 급 직원들까지 올려주면 정부가 하는 계산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니까요. 추가ㆍ연장근무 줄여서 인건비를 맞춰야죠. 이 수밖에는 없어요. 대기업이나 중저가 프렌차이즈 업체한테 시장 빼앗길까봐 조마조마한데 어쩌겠습니까. 마음같아선 다 같이 모여서 납기 담합이라도 해야할 판이에요."

이번엔 어느 소상공인 얘기. 서울 서대문구에서 오징어ㆍ생선찌개 요리를 식사ㆍ안주용으로 만들어 파는 D가게의 젊은 사장 부부는 작은 홀에 테이블을 몇 개 두고 배달을 병행한다. 배달 비중이 훨씬 크다. 음식을 배달하는 가게가 음식의 맛과 신선도를 지키면서 넓은 배달망을 확보하는 건 말로만 쉽다. 가까스로 '여기 괜찮다'는 리뷰 수 십 개, 수 백 개쯤 확보하면 살아남을 수는 있는 정도다. D가게는 옆 동까지만 배달을 한다. 동선을 따지면 같은 동이나 다름없다. 음식을 받아서 포장을 열었을 때 김이 모락모락 나게 하겠다는, '역발상 프리미엄 동네 배달 서비스'다. 적중까지는 아니라도 입소문이 그럴듯하게 나서 배달 알바 3~4명을 고용했다. 주간에 1명, 야간에 2~3명이 배달을 한다. 낮에는 '남편사장'이 배달을 거든다. 주말이나 연휴에는 배달 알바 1~2명을 추가로 투입한다.

사장 부부는 요즘 주방 이모님만 남기고 배달 직원들은 정리하려 한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다. 대신 배달대행업체와 제휴를 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더 멀리까지 서비스를 해볼 참이다. 일자리안정자금 같은 정부 보조는 D가게 사장 부부에게 애매하다. 제도권으로 들어가는 문제라서 그렇다. "손실이 얼마나 생길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S사 김 대표나 D가게 사장 부부에게 물으면 대답은 "글쎄요"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그런다고 이들을 욕하겠는가. 여차하면 빚더미에 오른 채로 나자빠지는 바닥에서 버티고 버티는 사람들은 당장 다음 달이, 다음 주가, 내일이 두렵다.
정부의 설명은 간명하고 똑떨어진다. "중소기업 가운데 인건비 비중이 20%를 넘는 기업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10% 정도예요. 직원 전체가 최저임금 인상 적용 대상이라고 가정했을 때, 인건비 비중이 10%인 경우 총비용이 약 2%, 20%라고 하면 약 3% 증가합니다. 그 2~3% 인상분을 정부가 다 지원을 해 드리는 거예요.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그보다(인상분보다) 더 많은 혜택을 드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 지난달 12일 여성경제인 신년하례식 축사中)" 이런 부등식이다. '비용증가 2~3% X 해당 中企ㆍ소상공 수 < 5조원 안팎 정부 보조금' 그런데 저들은 왜 두려워할까. 그걸 산술로 다 풀 수 있을 거라고, 정부는 정말 믿는 걸까.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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