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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교육,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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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수 교총 회장

하윤수 교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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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교육계에 몸 담은 지도 어느덧 30년이 되어간다. 분명한 건 '교육'만큼 어려운 게 없다는 사실이다. 잠시 유년시절로 되돌아 가본다.

'벌공을 찬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하나의 운동장에 수십 개의 공이 들어와 한꺼번에 각자의 팀끼리 자기들의 공을 찬다'는 것을 뜻한다. 베이비붐시대의 학교에서 흔한 풍경이었다. 자기 반 아이들끼리 또는 마을단위 중심으로 자기들만이 아는 공으로 쉬는 시간마다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 공을 차는 것이다. 수십 개의 공은 거의 같거나 비슷했다. 자기 팀 공이라고 우기거나, 공끼리 부딪혀 선배들이 우기면 그 공은 선배들의 공으로 결정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뿐만 아니라 실수로 선배들의 공을 차면 선배들에게 몇 대 얻어맞기도 했다.
하지만 유년시절 가장 행복했던 하나의 일을 떠올리라면 주저없이 벌공찼던 일을 꼽는다. 왜 그럴까? 쉬는 시간에 벌공을 차는데 학교와 선생님이 관여하는 것이라곤 오직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타종밖에는 없다. 다친 아이에게 달랑 빨간 소독약 하나 발라 주는 게 고작이다. 각 반 아이들끼리 편을 나누거나, 각 반의 선수들을 뽑아 차거나, 혹은 각 동네끼리 팀을 편성하는 일 등을 오로지 아이들이 다 한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며, 수업 시작종이 울리면 누가 공을 챙겨야 하는지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순전히 스스로 정한다. 뿐만 아니라 남의 공을 잘못 찼을 때, 엄중히 몇 대 맞는 것을 스스로 감수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수업 시작종이 울려 경기가 중단되더라도 중간 스코어를 정확히 기억해 다음 쉬는 시간에 이어가고 마지막 쉬는 시간에 가서야 경기가 끝난다. 여기까지 학교와 선생님은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일정한 경기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에 따라 스스로 이끌어 가는 힘을 지녔으며, 또한 그 힘을 잘 안배해 마무리짓는 능력도 가졌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적으로 '자기조절능력'이라는 것으로, 자기 혼자의 힘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또래집단과의 무수한 만남과 부딪힘 속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때 비로소 함양되는 것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은 학교와 선생님이 가르쳐서 터득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이 속에서 교육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그 긴 시간이 흐른 오늘에 와서야 교육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교육은 학습자 개인의 수월성 추구도 중요하지만 집단안에서의 협동적 교육, 즉 사회공동체적 협동교육의 근저에서 비롯됨도 잘 알 수 있다. 사회공동체적 벌공 차는 행동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 때론 서로간의 부딪힘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회를 깨닫고, 행복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교육은 어떠한가? 벌공교육은 교육도 아니고 반칙을 조장한다고 해 사라진지 오래다. 일부러 짬을 내 교육현장을 찾을 때면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을 쳐다본다. 몇몇 아이들의 술래잡기가 고작이다. 체육시간에 반씩 나눠 공차는 것도 오랜만에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학부모는 선생님께 교육과 행복을 찾아내라고 온통 아우성이다. 툭하면 선생님을 고발해 경찰차량이 학내에 불쑥불쑥 드나들고, 툭하면 가해학생을 고발해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통해 징계하는 현실을 쳐다보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모처럼 시간이 나서 부산 온천천을 거닐었다. 불과 몇 개월전까지 뼈만 앙상하던 나무는 어느덧 큰 잎과 함께 짙은 푸르름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니 숙제가 쌓여 있는 것만 같다. 답은 '구고심론(求古尋論)'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오늘날 우리가 찾고자 갈망하는 행복교육의 본질은 옛 것을 무시하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선인들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여러분의 교육은 행복하십니까?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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