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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권력 쓰기를 저울 다루듯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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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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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현대사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 중 과거에 사용되지 않았거나 또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됐던 말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권력(權力)', '권리(權利)'라는 말이다. 두 단어는 서양어의 번역어로, 권력은 독일어 'Macht', 권리는 'Right'의 번역어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개념을 번역하면서 '권(權)'이라는 말을 같이 사용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권'은 원래 특정한 나무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의미가 변해 저울추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됐다. 저울 중에서도 한쪽에 무게를 달 물건을 올리고 나머지 한쪽에 추를 올려서 물건의 무게를 재는 저울의 추를 말하는데, 요즘은 계기판이나 디지털로 무게를 표시하는 저울이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지만 1960~1970년대까지도 쌀가게나 푸줏간에서 쌀이나 고기의 무게를 달 때 흔히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저울추를 가리키는 '권'이 권력과 권리의 번역어가 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흔히 '권'은 '권세 권'으로 풀이되는데,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쌀이나 고기의 무게를 달 때 추를 하나 더 올리느냐 마느냐는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권'이 '권세'라는 의미로 전용되어 사용됐고 '권문세가'라든가 '권모술수' 같은 성어가 만들어졌다. 이처럼 권세라는 말에 내포된 힘(권력)과 이익(권리)이라는 의미 때문에 근대의 번역자들이 독일어 Macht와 Right의 번역어에 이 말을 넣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중국불교에서도 '권'은 널리 사용됐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후, 서역에서 혼입되어 들어오는 불교의 가르침을 분류하기 위해 그들 나름의 분류체계를 개발했는데, 그 중 하나가 '권교(權敎)-실교(實敎)'라는 개념이다. 비슷하게 '종교(宗敎)-권교(權敎)'의 개념도 있다. '권'은 산스크리트어 'upaya'의 번역어로, '방편'이라고도 번역된다. '임시방편'이란 말이 그렇듯이 그때그때 중생의 근기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의미하는 '실교'나 '종교'에 비해 낮은 가르침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곤 했다.

하지만 대승보살이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상대편에 맞게 가르침을 응용한다는 '선교방편(善巧方便)', 즉 훌륭하고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원래 의미를 생각해보면 '권'은 반드시 부정적인 뉘앙스만 갖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울이라는 '권'의 의미는 불교의 방편 개념에 꼭 들어맞는, 참으로 탁월한 번역어인 셈이다.
이처럼 에둘러 이야기하는 것은 권력 역시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해서다. 권불십년, 어떤 권력도 십년을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권리 역시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것이지만, 상황에 따라 적용되는 모습은 다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치 저울추가 그때그때 잴 물건에 따라 크기와 개수를 달리 해야 하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맞추는 것이 권력에 참된 뜻이 아닌가. 불교의 방편 개념이 그렇듯이 권력 또한 임시로 주어진 것이고 그것도 단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닌가. 더 나아가 권력을 운용하는 자는 보살처럼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그에게 주어진 힘과 이익을 적용하는 지혜와 중생의 어려움을 걱정하고 살피는 자비를 갖추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한국사회가 그동안 민주주의의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면 이제 그것을 적절하게 적용하기 위한 더 깊고 뛰어난 지혜를 길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명법 스님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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