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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일본은 반면교사인가 롤모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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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KOTRA 사장

김재홍 KOTRA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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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일본사람들이 한국사람들에게 이젠 그만 들었으면 하는 말이 있단다.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들은 만약 한국이 일본처럼 거품붕괴 상황에 처한다면 20년은커녕 10년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장기불황을 견뎌낸 자존심이 담겨 있다. 이와 달리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한국은 좋겠다. 우리가 성공한 정책은 따라 하고 실패한 것은 안 하면 되니까." 이 말에서는 빠른 추격자 전략을 구사해온 한국에 대한 견제와 시기심이 느껴진다. 뼈가 있는 이런 말들은 복잡 미묘한 양국관계의 인식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때론 반면교사로, 때론 롤 모델로 우리에게 일본만 한 나라는 없는 것 같다. 지난달 일본 출장길에서도 필자는 우리가 꼭 따라 배우면 좋을 것 같은 두 가지를 느꼈다. 먼저 일본 정부가 불황탈출을 위해 20년 가깝게 추진해오고 있는 쿨 재팬(Cool Japan) 전략이다. 2000년대 초반, 자민당의 고이즈미 정권은 내수시장의 성장 한계에 따른 전자 등 주력산업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애니메이션과 만화 같은 콘텐츠 분야와 의식주 관련 산업을 육성해 해외로 진출시키는 사업에 첫 시동을 걸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 분야는 주로 내수용이었다. 매력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지만 자금과 전략 부재 등으로 해외진출이 어려웠다. 수익창출 가능성이 불투명해 금융기관들도 투자를 꺼리는 이들 분야에 쿨 재팬은 장기간에 걸쳐 투자하면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해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정부출자와 민간투자로 공동 운영되고 있는 쿨 재팬 펀드의 출자금은 현재 523억엔 규모인데 앞으로 더욱 늘어난 전망이다.

쿨 재팬 펀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각계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듣고 공론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성장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그런 덕분인지 이 전략은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고 추진됐고, 오히려 구체적인 목표가 더 커지면서 발전하고 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당파를 초월해 국가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모습이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이번 출장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롤 모델로 삼을 만한 기업체도 두 곳 방문했다. 노리다케는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 회사로 창업한 지 백 년이 넘은 장수기업이다. 이 회사는 도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활용되는 연마제 등을 전자부품, 세라믹, 태양전지 등 다양한 분야로 적용해 첨단 산업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현재 총매출에서 자기류 사업은 15%에 불과하고 기타 첨단 세라믹 분야가 75%를 차지한다. 우리에게 미싱으로 익숙한 브라더공업도 비슷한 경우다. 이 회사는 미싱 분야에서 축적한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IT사무통신기기 분야에 도전해 큰 성공을 거둬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이 회사 역시 매출의 상당 부분을 IT사무통신기기에서 올리고 있을 정도로 사실상 새로운 회사나 다름없다.
이들 두 회사는 일본기업이 왜 오래 유지되고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는지를 대변해준다. 자신들이 원래 갖고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환경 변화에 맞춰 기술개발에 힘쓰면서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것에 비결이 있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떻게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요즘 일본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분석들이 많다. 실질 GDP가 4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하고, 고용환경은 사상 최고의 호황을 구가하며, 설비투자도 회복 기조를 보이고 있다. 이런 회복세의 바탕에는 쿨 재팬 같은 일관된 국가정책과 장수기업들의 부단한 혁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눈여겨보고 꼭 따라 배워야 할 교훈이다.

김재홍 KOTRA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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