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UN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가 채택되고 이어 2016년 파리기후협정이 발효되면서 세계 경제의 구조적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이나 빈곤 퇴치 같은 지속가능 발전 목표가 한갓 구두선이 아니라 각국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구체적 정책 목표가 된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자금이 소요되지만, 대부분 국가에서 이를 위한 정부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대안으로서 연기금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G20녹색금융연구집단, FSB기후관련재무보고TF, EU지속가능금융고위전문가위원회 등이 앞 다투어 지속가능한 금융의 역할을 구체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연기금이 지속가능 발전을 추동하려면, 투자 의사 결정에 환경 사회 지배구조 (ESG) 같은 비재무적 요소를 통합하는 이른바 책임투자(RI)에 전면적으로 나서야 한다. 책임투자는 재무적 성과만이 아니라 환경사회지배구조 (ESG) 같은 비재무적 성과도 함께 고려하고, 동시에 능동적인 주주권(active ownership)을 행사하는 투자를 지칭한다. 재무적 성과가 과거 이루어진 행위의 결과라면, ESG는 미래의 보이지 않는 기회와 위험으로서 미래가치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책임투자는 ESG 요소로 인한 미래의 부정적 위험을 줄이고, 그로 인한 기회를 포착함으로써, 지속가능 경제로 전환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를 지속가능한 체제로 전환시키려면 특히 연기금이 책임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연기금은 수익성만이 아니라 안정성과 공공성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데, ESG 분석을 통해 미래의 위험에 대처하고 반사회적 반환경적 기업에 대한 투자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책임투자가 투자 수익률이 낮다고 주장하지만, 2천여 실증 사례를 분석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ESG 기준을 엄격히 적용한 경우 수익률이 벤치마크보다 더 높다고 한다.
문제는 제도와 시장 모두 미비한 점이 많다는 데 있다. 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투자 대상 기업의 ESG 정보 공개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연기금 운용에 있어 ESG를 고려하게 하는 방안도 국민연금에만 적용될 뿐이다. 시장의 측면에서 보면 ESG 정보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제공하는 전문가 집단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특히 책임투자의 편익을 가장 많이 보는 자산소유주(asset owner)가 이들 전문가의 양성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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