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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계란이 왔어요" 그리운 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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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엔 치맥이 진리." 소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금요일 저녁 외식에 딸아이는 치킨을 고집했다. 엄마 아빠는 어차피 술 한잔 할 거니 이왕이면 오늘 저녁은 치킨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킨은 내일 꼭 먹고 오늘은 삼겹살이나 조개구이가 어떻겠느냐고 달랬지만 딸아이는 치킨은 토요일보다는 금요일에 먹는 게 제맛이라고 생떼를 쓴다. 여기서 물러나면 부모 체면이 말이 아니지. 괜한 오기가 발동한다. 요즘 조류독감(AI)이 유행이라 치킨 꺼리는 사람들도 많다(AI 바이러스는 75도이상의 온도에서 5분이면 사멸되니 이 말은 순전히 거짓말이다)고 해봤지만 장사가 안될 때 주문하면 가게주인이 얼마나 반가워 더 맛있게 튀기겠느냐는 논리까지 꺼냈다. 삼자합의는 실패로 끝났고 그에따라 그날 저녁 메뉴는 '제3지대' 족발이 간택됐다.

풍경이 달라진 것은 집뿐만이 아니다. 을지로 골뱅이 골목으로 칠 것 같으면 매콤한 파무침에 쫄깃한 골뱅이의 식감으로 유리지갑 직장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모임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인심 넉넉한 이모가 서비스라며 내놓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계란말이도 일품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계란말이 서비스가 자취를 감췄다. 뚝배기 가득 넘쳐 흐르던 계란탕이 절반도 안되는 집도 있다. 계란말이가 안되면 달걀말이라도 달라고 떼쓰는 것은 아재개그 축에도 못낀다. 서비스가 아니라 주문을 한다해도 계란값이 금값이 된지라 손이 떨린다.
회사 인근의 단골 식당도 사정은 비슷하게 변했다. 야속하게도 계란 후라이값을 4배나 올려버린 것이다. 평소 500원 하던 것을 2000원으로 대폭 상향조정한 것. 계란 한판이 1만원에 가까워진다고 하니 야박한 주인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쪽 면만 살짝 익혀 노른자가 탱글탱글한, 말 그대로 '서니 사이드 업' 자태를 뽐내던 그 집 후라이를 당분간 맛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단골 손님들의 불평어린 눈빛을 간파했던지 주인 아저씨는 그 다음에 다시 찾았을 때는 후라이를 서비스로 내놓았다.

닭 한마리와 계란 하나가 바꿔놓은 일상이다. AI로 가금류 2500만마리가 살처분됐고 이중 알 낳는 닭(산란계)이 1500여만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닭이나 계란은 죄가 없다. 허술한 방역 당국을 탓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용케 AI를 피한 닭이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해 병아리로 된 후 닭이 되어 알을 낳을 수 있게 되기까지 적어도 6개월이 걸린다는 점이다. 이런 시나리오라면 당분간 계란 대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막상 계란 대란이라고 하니 계란처럼 전후방 효과가 있는 생필품도 없는 듯하다. 실제 계란은 일반 가정집 식탁은 물론 각종 빵과 과자를 만드는 제빵 제과업체에서도 필수 원재료다. 그래서 계란값 상승은 식탁물가 상승으로 그대로 연결될 공산이 크다.
평온한 오후 낮잠이라도 잘라치면 골목길 멀리서부터 시작해 정적을 깨웠던, 그래서 야속하기만 했던 계란장수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계란이 왔어요. 계란이 와. 한판에 3000원. 싱싱하고 맛좋은 계란이 왔어요. 한판에 3000원." 스피커에서 무한반복되던 그 목소리가 그리워질 줄이야.

김동선 사회부장 matthew@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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