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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자랑스러운 장애인 행진 (Disability Pride Pa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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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 주(駐)유엔 대사.

오준 주(駐)유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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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는 작년과 올해 7월 초여름의 맑은 날씨 속에 '자랑스러운 장애인 행진(Disability Pride Parade)'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빌 드 빌라지오 시장 취임 후 하반신 장애인인 빅터 캘리지 씨가 장애인 담당 국장으로 임명되면서 시작된 행사다. 장애인도 누구나와 마찬가지의 권리와 존엄성을 가진 자랑스러운 사회구성원임을 강조하는 행진으로, 뉴욕시 인사들과 장애인과 비장애인 수천 명이 참석했다.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가족, 친구, 동료들과 함께 맨해튼의 마천루 사이를 힘차게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고 춤과 노래로 축제 분위기를 돋우었다.

필자는 2년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의장을 맡고 있어서 행진에 참여하고 짧은 연설도 했다. 장애인의 권익을 자선이 아닌 사회적 권리의 차원에서 보호하기 위해 협약이 만들어졌음을 강조하고, 미국이 조속히 가입할 것을 촉구했다. 올해로 채택 10주년을 맞은 장애인권리협약은 인권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국제규범의 하나이고 165개국이나 가입해 있지만, 미국은 아직 의회의 비준 동의를 받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유엔 193개 회원국 중 2개국의 대사가 시각장애인이다. 유엔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중 한 대사는 점자 단말기 같은 기기를 이용해서 연설을 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지만, 전자투표를 할 때 버튼에 점자 표기가 없어서 다른 대표단에게 대신 눌러 달라고 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고 필자에게 토로했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계기로 우리 대표부는 지난해 유엔의 각종 시설과 제도를 더 장애친화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유엔 사무총장이 보고하도록 요청하는 결의안을 유엔 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시켰다.

국제통계에 따르면 장애인은 전 세계 인구의 15% 정도인 10억명에 이른다. 매년 6월 개최되는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의에는 각국에서 1000여명이 모여 장애인 인권을 논의하는데, 연중 유엔에서 개최되는 회의들 중에서 가장 큰 회의의 하나이다. 유엔의 로비가 휠체어로 가득 차고, 회의장에는 수화 통역사들이 바쁘게 활약하는 가운데 곳곳에 인도견들이 앉아 있다. 올해 회의에서는 지적장애 문제를 주제의 하나로 다뤘다. 전체 장애의 약 20%로 추산되는 지적장애인은 신체장애인보다 회의 참여와 같은 활동이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장애계가 중요시하는 '우리의 참여 없이는 우리에 관한 논의도 없다 (Nothing about us without us)'는 원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여러 명의 지적장애인들은 느리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지적장애가 의학적 접근을 넘어 사회적 접근방식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아시아 국가 중에 장애인 권익 보호에 앞서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애인복지법 같은 지원제도가 비교적 잘 돼 있고, 장애인권리협약 성안 시에 여성장애인에 관한 조항을 포함시키는 등 적극적 역할을 했다. 2012년 채택된 아태지역 장애인 권리실현을 위한 10년 계획도 우리의 주도로 채택돼 '인천 전략'이라고 불린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한 보조기기를 유엔 회의에 참석하는 장애인들에게 제공하는 접근성센터도 우리의 기여로 설치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인 역할에도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미국과 비교해 볼 때에도 앞서 있다고 보기 어렵다. 지하철 계단 옆에 비탈길을 만들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 놓았지만,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은 달리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하고 역 입구의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다. 장애인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사회 각 분야에 참여할 수 있으려면 제도적 장치와 함께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 제도와 인식이 장애인 권리 보호에 필요한 두 개의 바퀴라면 우리는 아직 한 쪽 바퀴가 너무 빈약하다. 장애인권리협약 10주년을 맞이한 올해 우리 사회의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스스로 돌아볼 적절한 때가 아닌가 싶다.



오준 주 유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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