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모자라 그 동안 이름값 꽤나 하던 글로벌 기업들이 소비자들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히고도 자성할 줄 모르는 오만방자한 태도에 자존심이 상하고 분통이 절로 터진다. 소비자피해보상제도가 잘 정비돼 있다고 하는 미국에서 살인 가습기 사태로 불리는 옥시 사건과 같은 범법행위를 자행하는 것은 상상조차하기 힘든 일이고, 만일 그런 행위를 했다면 소비자들에게 징벌적 배상으로 기업의 명운까지 걸렸을 것이다. 폭스바겐은 최근 자동차 배출가스 조작과 관련해 미국 소비자들에게 약 18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배상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기업만 탓하고 있을 것인가? 현재의 허술하기 그지없는 소비자보호 법제를 가지고는 이들 글로벌 기업에 대응할 수 없음을 정부나 국회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관련 법제의 개선에 소극적이다. 정부 당국은 사건이 발생하면 여론에 떠밀려 국민안전 운운하며 '사후 약방문' 식으로 말로만 요란하게 떠들다가,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넘어가 버리는 관행이 체질화 돼 버린 것은 아닌지 통렬하게 반성할 일이다.
결함 있는 제조물 판매에 대해 과징금 부과 등의 행정조치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실제 피해를 본 소비자에 대한 금전적 배상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소비자 피해 배상 제도의 근간부터 다시 짜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집단소송 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이다.
그리고 기업의 반사회적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뤄져야 한다. 단순히 손해를 끼친 만큼만 배상하는 현행법 체계에서는 기업들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서 탈법행위의 유혹을 떨쳐내기 어렵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이라는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기업의 반복적 탈법행위라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제도에 대해 그동안 피해 당사자는 물론 사회 각계각층에서 도입의 시급성과 필요성을 줄기차게 외쳐 왔고, 이는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은 요지부동으로 '기업 활동 위축' 우려 등 갖은 이유를 들이대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악의적인 위법행위를 한 기업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사회 정의상 당연한 것 아닌가.
우리나라는 금융소비자 피해 구제에 용이하도록 2005년 증권 분야에서 집단소송 제도를 도입했고, 2011년 이래 하도급법 등을 개정해 기술탈취 등 일정한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했다. 그런데 필자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이러한 제도를 도입해 이들 산업이 위축됐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기업이 합법적인 경영을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허술한 법체계로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는 소비자들을 국가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소비자보호법제의 개혁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당정'의 입장이 문제되겠지만 말이다. 정부와 국회가 말로만 국민을 위한 정치를 운운할 것이 아니라, 제조물 결함 등으로 피해가 생긴 경우 집단소송 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적용될 수 있도록 국민들 앞에 가시적인 조치를 내놓을 때이다.
맹수석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금융소비자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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