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가 바뀌기 전 시설지원과에 근무하던 5년간 알고 지냈던 이다. 책상 구석 서류더미 사이에서 양말 상자를 찾아 집어드는 순간, 싸한 느낌이 든다. 네모납작한 상자 안에 지폐가 각을 맞춰 들어있다. "아니 요즘 누가 이렇게…." 서둘러 캠퍼스 내 우체국으로 달려가 현금을 우편환으로 G에게 반송한다. 창구 여직원이 눈치챘다는 듯 얄궂은 미소를 짓는다. "과장님, 수수료 3500원은 여기서 제하고 보내셔도 될텐데요."
이날 오전엔 학교가 230억원을 새로 지은 '청렴관' 준공식이 열렸다. 대학 이사장과 총장, 지역 국회의원 등 내외빈 100여명이 참석하는 자리다. 기존에 1인당 4만원이었던 음식을 음료와 주류까지 포함해 2만9000원에 주문했다. 몇가지 메뉴를 빼서 단가를 맞췄다는데, 혹여 허술하다는 얘기가 나오지나 않을지 다들 걱정중이다.
행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난데 없이 감사과에서 호출이 온다. 혹시 G과장의 돈뭉치 때문인가 마음을 졸였는데 웬걸 지난 추석 때 돌린 개당 4만7000원짜리 선물세트에 대해 묻는다. 청렴관 설계 때 도와준 대학 교수 몇 명에게 건강음료를 인사차 보냈는데 이게 시중에서는 5만원이 넘는 가격이라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A씨는 "추석선물은 김영란법 시행 전 일인데다 구매가격 기준으로는 문제가 없지 않느냐"며 항변하고 감사과를 빠져나왔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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