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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메르스 환자 영면…남겨진 자들의 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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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번 환자 임종 직전까지 "살고싶다"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친구의 마지막 모습은 차디차게 굳어 있었다. 보호장구를 겹겹이 갖춰입고 마주한 친구는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있었다. 격리병상에서 눈을 감기 전날까지 "살고 싶다"고 했다.

국내 마지막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환자인 80번째 확진자(35)가 지난 28일 경기도의 한 추모공원에서 영면했다. 메르스가 유입된 5월27일 기침을 동반한 폐렴증세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슈퍼 전파자'로 불리는 14번째 확진자(35)와 접촉해 메르스에 감염됐다. 지난해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을 앓았지만, 거의 완치된 상태였다. 하지만 80번 환자는 메르스 감염 이후 림프종까지 재발하면서 6개월 가까이 병마와 싸우다 지난 24일 서울대병원 격리병상에서 눈을 감았다.
"친구가 메르스에 걸렸을 때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면역력이 낮은 상태니까 어쩌다 감염병에 걸렸겠지 했는데, 메르스가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갈지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80번 환자의 친구인 허모씨(35·여)는 오랜 벗의 죽음이 지금도 믿겨지지 않는다. 병세가 악화되기 직전까지도 초중고교 동창들의 단톡방(단체 대화방)에 "어서 집으로 가고싶다"고 적었던 친구다.

친구들이 80번 환자의 병세가 위태롭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이달 초다. 80번 환자의 유가족이 "항암치료를 못받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하면서다. 친구들은 80번 환자의 구명운동을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80번 환자를 구하자는 의미인 'Save the 80th' 페이지를 만들고 인터넷 게시판과 언론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했다. 80번 환자에 대한 격리해제가 이뤄지지 않아 항암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렸다.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조혈모세포이식도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친구는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허씨는 "우리가 너무 늦게 손을 쓴 것이 아닌지 너무 후회된다"면서 "더 빨리 친구의 상태를 알았다면 항암치료를 조금 더 일찍 받게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절규했다.

임종 전날인 23일, 80번 환자는 몹시 불안해했다. 그동안 80번 환자의 부인인 배모씨만 면회가 가능했지만 직계가족들의 면회가 허용됐다. 80번 환자도 마지막을 직감했다.

80번 환자의 유가족과 친구들은 격앙된 상태다. 80번 환자가 메르스를 극복하고 퇴원한지 열흘만에 재입원하던 날 보건당국은 "체내에 잠복해 있던 극소량의 바이러스 유전자가 검출된 것"이라며 "감염력은 매우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10월12일 브리핑,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고 했다. 하지만 임종 때까지 한 달이 넘게 격리상태가 계속됐고, 이 때문에 제대로된 항암치료를 받을수 없었다는 것이 유가족과 친구들의 주장이다.

허씨는 "친구가 살아있을 때에는 격리해제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금, 보건당국에 책임을 묻고싶다. 메르스 방역에 실패한 당신들이 잘못으로 친구를 보낸 만큼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고싶다"고 말했다.

80번 환자의 4살된 아들은 앞으로 아버지를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 장례식 동안에도 "아빠는 주사 맞고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80번 환자의 부모님은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우리는 손자가 아빠를 찾을 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눈앞에 캄캄하다"면서도 "36년간 착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들과 함께 살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 며느리와 손자를 남겨줘서 고맙다"고 적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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