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갑동이와 하수 을동이가 내기 당구를 치면 누가 돈을 딸까? 당구장 주인이다. 흔히들 ‘자본주의의 꽃은 증권’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 그건 ‘돈 놓고 돈 먹기’ 식 도박의 속성을 살짝 가려주는 커튼에 불과하다. 신입사원 부서배치 때 영업부 고참들이 ‘월급쟁이의 꽃이 영업’이라 꼬시지만 사실은 천상천하 ‘을’이 영업인 것처럼.
도박의 꽃이라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는 없는 것이 네 가지라고 한다. 우선 창문, 시계, 거울이 없다. 해가 져 어두운 밖을 못 보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도박으로 초췌해진 자신의 몰골을 못 보게 하려는 것이란다. 없는 나머지 하나는? ‘제 정신 박힌 사람’이란다. 곳곳에 붉은 색 카펫을 깔아 빈자의 욕망을 충동질하는 카지노, 비행기 탑승구에까지 배치된 슬롯머신은 마지막 남은 동전까지 모두 털고 가시라는 자본의 탐욕적 메시지를 대변한다.
그러므로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는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 이야기’다. 아메리칸 드림이 빚 좋은 개살구라는 거야 진작에 드러난 일이듯 22%의 미국 가구가 전통 금융(은행)에서 배제돼 연리 800%의 고리대금에 발목이 잡혀있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저임금 노동을 하는 25~34세는 수입의 40%를 대출금 반환에 써야 한다. 1%를 위해 99%가 털리고 산다. 그 1% 아성을 지키는 첨병은 ‘경찰과 언론’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체제’니 ‘전복’이니 ‘혁명’이니 하는 말들이 숱하게 나온다. 굳이 미국 이야기임을 강조하는 것도 자칫 책 소개 잘못하다 ‘종북좌빨’로 몰리기 십상이어서다.
데이비드는 가장 민주적이라고 자랑하는 미국 정치시스템이 사실은 소수 귀족의 이익을 대변했던 원로원 중심의 로마 공화정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집정관), 상원(원로원), 의회(평민회)의 구조다. 상하의원은 일주일 평균 1만 달러를 조달해 워싱턴 사무실을 유지해야 재선에 성공할 수 있다. 그 돈이 1%에게서 나온다. 이들이 당선 후 누구를 위해, 누구와 손 잡고 일할지는 뻔하다. 민주주의 아닌 민주주의에 속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벨경제학상을 탔던 아마르티아 센 교수 역시 ‘아프리카 남부, 인도의 촌락평의회가 (미국보다) 훨씬 민주적’이라 거든다.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정호영 옮김/이책/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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