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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고래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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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 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라고 시인 정호승은 노래했다. 푸른 등줄기로 먼 대양을 가르며 하늘을 향해 직선의 물줄기를 뿜어 올리는 고래는 영원한 자유이자 꿈이다.

70, 80년대 질풍노도의 청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은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열창했다. 특히나 암울했던 정치상황에서 어깨동무를 한 청년들은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를 외치며 민주화의 꿈에 고래를 끌어들였다.
안성기, 이미숙, 김수철이 주연했던 동명의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쳤던 것도 그 즈음이었다. 무정한 도시 서울이 준 상처로 실어증까지 얻은 매춘부 춘자를 고향 우도로 데려다 주려는 두 청년의 고달픈 여정을 함께하던 관객들은 마침내 환히 열리는 남해 푸른 바다에 온 가슴이 파랗게 물들었다. 주인공들이 사냥했던 고래는 먼 바다에 있는 거대한 물고기가 아니라 작게라도 내 이웃을 사랑하는, 가까운 것이었다.

<고래 날다>는 청소년 소설이다.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곧 있을 중간고사 후에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부탁해 고르게 됐다. 그 나이 때에 읽어 둠직한 <데미안> 같은 고전도 좋겠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공기로 숨을 쉬는 대안학교 또래들과 아픔과 희망의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다.

이 소설에는 두 마리의 고래가 산다. 작가의 고래와 아이들의 고래다. 소외된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부단히 글을 쓰는 작가의 고래가 원양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날을 위해 긴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두물머리 대안학교로 온 태수, 몽희, 은규, 아영이 등등이 키우는 고래도 이제 막 바다로 나갈 채비를 갖추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한강이 되는 두물머리는 서로 다른 개성들이 합해져 새로운 빛이 되는 곳이다. 아들을 잃어 아픔이 큰 교장 선생님이 빚진 마음으로 ‘날개학교’를 굳이 이 곳에 세운 이유다.
아이들은 그래 봐야 아이들이다. 다 큰 척, 강한 척, 삐뚤어진 척 해도 그들의 속은 옅은 바람에 그네 타는 삼십 촉 백열등처럼 가녀리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누구보다 따듯한 사랑이 살아있다. 그들의 일탈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가장 간절히 바라는 그들의 몸짓일 뿐이다.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세 번, 네 번 멈추지 않는 ‘교장 선생님, 나침반 선생님, 친구들’의 관심, 사랑, 우정이 철마 같던 ‘태수’를 순한 양으로 되돌려 놓는다.
‘학교는 성적이 아니라 적성을 공부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말은 백 번 맞는 말이지만 성적이 지상의 모든 것인 제도교육의 현실 앞에선 끝내 공염불이다.

학과공부와 시험성적에 미래를 걸 수 있는 ‘공부과’ 학생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엑세서리로 전락한 나머지 대부분의 아이들도 그러나 1등 할 수 있는 자기만의 분야는 모두 가지고 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어른들은 왜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고래를 찾도록 믿음과 사랑으로 기다려주지 못하는 것일까. (박경희 지음 / 다른 / 1만2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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