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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계포일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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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필수 증권부장

전필수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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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여년 전 중국 초(楚)나라에 계포(季布)라는 사람이 있었다. 12살 때 친구들과 연못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외출하기도 어려울 만큼 폭우가 쏟아졌다. '그래도 약속은 지킨다'며 연못에 기어가듯이 갔다. 폭우에 연못물이 불어나 익사할 위기에 빠졌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평판을 얻었다. 그의 신의에 초나라 사람들은 '황금 100냥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승낙을 얻는 게 더 낫다(季布一諾)'고 칭송했다.

성인이 된 계포는 '항우'의 휘하에서 '유방'군과 싸워 공을 세웠다. 항우가 망하자 속절없이 도망자 신세가 됐다. 유방은 계포의 목에 막대한 현상금을 걸었다. 그런데 계포를 고발하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유방의 수하에게 부탁해 계포를 중용할 것을 권했다. 덕분에 계포는 한(漢)나라 치하에서도 공을 세우고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최근 상장사 대표인 A씨를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두 번씩이나 약속 당일, 중요한 일정이 생겼다며 약속을 미루자는 연락을 받았다. 첫 번째는 사업 인허가와 관련한 중요한 일정, 두 번째는 세계적 투자자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일의 '경중'을 따진다면 선약을 깰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해도 됐다. 다만 '믿음이 가는 사람이 아니구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A씨는 10여년 전부터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질 만큼 유명 인사였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 인사들과 친분을 과시할 만큼 마당발이기도 했다.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그가 운영하던 회사는 시가총액 규모가 한때 수천억 원을 넘기도 했다. 하지만 금방 재벌 반열에 오를 것 같던 기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그가 공약한 사업 결과는 제때 나오지 못했고, 결국 두 차례나 실패의 쓴맛을 봐야 했다.

두 번째 약속을 바람 맞는 순간, '(A씨가) 왜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는지 알겠다' 싶었다. 그럴듯한 데다 거창하기까지 한 사업 아이템에 막강한 인맥을 갖춘 A씨는 투자자들을 곧잘 끌어 모은다. A씨에게 투자한 사람들 중에 단기간에 쏠쏠한 재미를 본 이들도 제법 있다. 하지만 A씨가 막판 자금난에 몰렸을 때 그에게 손을 내민 이들은 거의 없었다.
계포는 사소한 약속이라도 한 번 하면 반드시 지켰기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살아나 성공할 수 있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은 "신용은 얻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 장기적인 사업에 있어서는 신용이 제일"이라고 했다.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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