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관한 한 우리의 감정과 시야는 '극일(克日)'의 주변을 전전한다. 한국 선수가 차는 축구공은 상대가 일본이 되면 보통 축구공이 아니다. 한반도 불법 강점, 독도 침탈, 종군위안부, 강제징용, 창씨개명 강요 등 너무나도 많은 것이 공 하나에 담긴다. 절대 져서는 안 된다. 이 강박관념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과거에 그랬듯이.
2011년 8월 10일. 조광래가 이끄는 대표팀은 삿포로에서 열린 일본과의 정기전에서 0-3으로 졌다. 1974년에 열린 정기전에서 1-4로 진 이후 37년 만에 당한 패배였다. 일본 원정 11년 무패 기록도 종지부를 찍었다. 이른바 '삿포로의 굴욕'이다. 조광래는 해외파 선수들의 경기 감각 저하와 선수들의 부상을 패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을 앞두고 좋은 보약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축구팬들은 아시안컵 탈환에 실패한 데 이어 일본에 참패하자 조광래의 능력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축구팬들은 일본에 졌을 때 분명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감독에게 매우 가혹하며 그의 애국심을 의심한다. 물론 조광래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참패한 홍명보가 "우리 선수들이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좋은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가 뭇매를 맞은 것만큼 비판받지는 않았다. 조광래는 '축구팬=국민'이라는 등식이 엄연한 가운데 국가대항전(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에서 패했지만, 일단 한 경기 패배였다. 딛고 일어설 기회가 있었다.
문화스포츠레저부장 huhball@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