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책골도 불사한 조광래의 승부욕
1986년 6월 10일 콰테목 경기장에서 벌어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조광래가 후반 37분 기록한 자책골은 점수 차를 1-3으로 만들고 끝내는 2-3으로 패하는 빌미가 된 결승골이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이미 두 골을 넣은 이탈리아의 골잡이 알레산드로 알토벨리가 골 정면으로 쇄도하는 위기의 순간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라붙은 결과 파생된 불운한 결말이었을 뿐이다.
허정무가 후반 43분에 넣은 골은 승부를 뒤집는 데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이 장면은 매우 재미 있다.
이탈리아 진영,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미드필드에서 얻은 프리킥을 조광래가 오른발로 차올리고, 최순호가 벌칙지역 왼쪽에서 헤딩으로 연결해 골문 오른쪽 앞으로 떨어지는 공을 허정무가 달려들어 수비수 세 명 사이에서 오른발로 차 넣는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서로 꾸짖으며 수비 실수를 자책한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한 데 엉켜 기뻐하고 있다. 최순호, 김종부, 조광래 등이 보인다.
이렇게 '태도'를 문제 삼는다면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0-3으로 뒤진 후반 28분 박창선이 만회골을 넣었을 때 우리 선수들의 행동도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경기는 아직 17분이나 남았고, 멕시코의 고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경기를 포기할 시간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당시는 그런 시대였다. 유럽 굴지의 리그로 인정받는 독일의 분데스리가에서 전설을 쓰고 있는 차범근을 대표선수로 발탁하느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던 시기, 차범근이 상대 수비수를 한두 명씩 달고 다니며 만들어내는 공간이 얼마나 많은 기회를 자신들에게 제공하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시절이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의 제왕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가 4년 뒤 이탈리아월드컵에서 한 역할을 상기하면, "차범근이 멕시코월드컵에 무임승차해 한 일이 대체 뭐냐"고 떠드는 일이 얼마나 축구에 대한 이해를 결하고 있으며 인격적으로는 야만에 가까운지를 알 수 있다.
적어도 2015년 현재까지 대한민국에 차범근에 필적할 선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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