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차범근 최고'라는 주장을 반박할 때 박지성이 자주 등장한다. 박지성은 이 시대 최고의 리그에서 뛰었고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도 했다. 당시 결승전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거기까지 가는 데 절대적으로 공헌했다. 하지만 한 30년쯤 지나 박지성이 지금의 차범근 나이가 되었을 때, 누가 최고인지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면 나는 (그때도 살아 있다면) 차범근에게 투표하겠다.
차범근이 활약할 때 독일 분데스리가는 한 팀에서 외국인 선수를 두 명만 기용할 수 있도록 했다. 차범근은 상상하기 어려운 경쟁을 뚫고 주전 선수가 된 것이다. 프리미어리그에는 외국인 선수에 대한 제한이 없다. 박지성은 감독이 믿고 기용하는 선수였지만 주력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차범근은 두 번 유럽축구연맹(UEFA)컵을 들어올렸다. 1980년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 88년 바이엘 레버쿠젠 소속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뛴 81년엔 독일 컵(도이체 포칼)에서 우승했다. 분데스리가 308경기에서 98골, 포칼 16경기에서 8골, UEFA컵 17경기에서 4골을 넣었다. 국가대표로는 127경기에서 55골을 기록했다. 박지성은 교토 퍼플 상가와 PSV 에인트호번 시절을 포함, 318경기에서 45골을 넣었다. 국가대표로는 100경기 13골이다. 물론 차범근은 공격수, 박지성은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의 차이가 있다.
아무튼, 허정무가 한국 팀을 위안하는 골로 2-3으로 만들었을 때 조광래도 달려들어 함께 기뻐한다. 조광래는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한국이 넣은 모든 골에 관여했다. 1-1을 만드는 최순호의 오른발 슛은 조광래가 미드필드에서 길게 뿌려준 정확한 패스를 받아 두 번 드리블한 다음 오른발로 차 넣어 만들었다. 지난회에 설명했듯 허정무의 추격골도 조광래의 프리킥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조광래의 자책골.
뿐만 아니라 조광래는 1986년 6월 5일 에스타디오 올림피코 우니베르시타리오(멕시코시티)에서 열린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 0-1로 뒤진 후반 25분 김종부가 터뜨린 동점골도 어시스트했다. 그의 헤딩 패스를 김종부가 가슴으로 받아 떨어뜨린 다음 돌아서면서 오른발로 차 넣음으로써 대한민국 축구는 월드컵 출전 사상 처음으로 승점을 얻었다. 멕시코 월드컵 당시 조광래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두뇌였고 살림꾼이었으며 가장 헌신적인 파이터였다.
대표팀 감독 조광래의 계약기간은 2년, 성적에 따라 월드컵까지 맡는 조건이었다. 축구협회는 2년 단위로 감독 계약을 했고, 조광래 역시 2년 동안 대표 팀을 지휘한 뒤 재평가를 받고, 재계약여부에 따라 월드컵 도전 자격이 결정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회택 위원장은 "아시안컵 성적이 좋지 않다고 감독을 해임하지는 않겠다. 월드컵을 겨냥한 감독 선임이기 때문에 월드컵 예선전을 치를 때까지 기술위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말뿐이었지만.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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