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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총리, 그 기구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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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 국무총리로 기록된 이윤영씨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인물이었다. 당시 정가와 언론은 김성수, 신익희, 조소앙 등 정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들 가운데 한 명이 총리로 임명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대세였을 뿐, 제헌국회 의원 가운데 하나였던 이씨에게는 관심조차 없었다.

헌법에 따라 국무총리를 임명해야 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고민도 깊었다. 정치적인 인물을 발탁하면 국정이 휘둘릴 우려가 크고, 그렇지 않은 인물을 뽑을 경우 국정동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부수립일을 20여일 앞둔 1948년 7월 말, 이 대통령은 당선 후 일주일 동안 총리 인선을 두고 고심한 끝에 소신껏 이윤영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정치권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일간지에 '남북통일을 위한 인선'이라는 글을 실어야 했다. 이 대통령은 이 글에서 김, 신, 조 등을 뽑지 않은 이유와 이 총리 발탁 배경을 소상히 밝혔다.
민의를 반영하고 남북통일을 대비하기 위해 선정했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초대 총리는 정치권의 거센 요구에 일주일 만에 낙마하고 말았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총리만큼 기구한 운명을 가진 직제도 드물다. 초대 총리가 정부 수립도 지켜보지 못하고 그만둔 데 이어 1공화국에서 임명된 총리들도 운신이 쉽지 않았다.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선출직 부통령이 자리잡고 있어 역할이 때로는 중복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 이후에는 총리자리가 직제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1960년 내각책임제와 함께 총리직이 부활했으나 2년 후 헌법이 개정되면서 총리 위상은 약해졌다. 다시 정부 직제에 편성된 직후에는 장관에 대한 임면권을 갖고 있었으나 개정된 이후에는 오늘날과 같이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할 수 있는 권한으로 제한됐다.
총리직에 대한 논란은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의원내각제에 적합한 자리를 대통령제에 적용하다보니 위상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미국 부통령처럼 대통령과 러닝메이트도 아니어서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고, 무엇보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다는 점에서 늘 파리목숨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표현도 '만인지상'보다는 '일인지하'에 오히려 강조점이 찍힌다.

헌법 84조와 85조에는 총리 임명과 역할이 명시돼 있다. 여기에 나온 총리의 권한은 대통령 보좌역, 행정각부 통할, 국무위원 제청과 해임건의, 국무회의 부의장 등 4가지 정도다. 이 가운데 국무위원 임면, 국무회의 부의장 역할 정도만 명확하게 드러날 뿐 나머지 권한은 모호하다. 이 때문에 총리후보자가 나올 때마다 그가 갖게 될 권한은 늘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이 된다.

헌법에 명시된대로 '행정각부를 통할(統轄)할 수 있는 책임총리가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는 대통령은 말 뜻대로 크게 거느리고 통합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총리 후보자가 새로 내정됐다. 가뜩이나 분권형으로 개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신임 총리의 권한과 역할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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