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황산벌'로 친숙한 백제의 명장 계백이 전쟁에 나가기 전 처자를 스스로 죽이며 한 말이라고 한다. 이런 결기로 전장에 나간 계백과 5000결사대는 초반 선전을 하지만 결국 패배하고 계백도 전사한다.
반면 조선 후기 실학자인 안정복은 "대체 장수가 되는 도(道)는 무엇보다도 내 집과 내 몸을 잊은 뒤라야 사졸(士卒)들의 죽을 결심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니 만약 조금이라도 내가 먼저 살고자 하는 마음을 둔다면 군심(軍心)이 해이되어 각각 제 살 궁리와 처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법"이라며 계백을 두둔했다.
개인보다 나라를 우선시하는 봉건시대 유학자들과 달리 요즘 가장이 계백처럼 했다간 집에서 쫓겨나기 십상일 것이다. 영화에선 계백의 아내가 어린 자식을 껴안고 "죽을 테면 너나 죽어라"고 소리친다. 21세기를 사는 감독의 상상이 만든 장면이라 그런지 어린 시절 책에서 봤던 남편의 결정을 의연히 받아들이던 모습보다 훨씬 공감이 갔다.
어린 아들이 글을 배울 무렵 함께 읽었던 그림책 중 일본 여우의 일생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봄에 태어난 여우 새끼는 어미 젖을 먹고 자라다 여름쯤 함께 사냥하는 법을 배우고 가을이 되면 독립해서 나간다. 가장들이여. 성장하면 떠나보내야 하는 자식 인생에 조금은 '쿨'해 지자.
전필수 아시아경제TV 차장 phil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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