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채택된 인권 결의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지난 2월 발표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다. 보고서는 북한당국이 자행한 광범위한 인권 침해를 적시한 뒤 이를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하고 이들을 국제사법제도 매커니즘에 제소할 것을 유엔에 권고했다. 이는 북한 당국자들의 국제사법재판소(ICC) 제소를 의미한다. 이번 인권 결의안 작성을 주도한 유럽연합(EU)과 일본은 COI의 권고 내용을 충실히 반영했다. 결의안은 북한에서 자행되는 광범한 고문, 공개처형, 정치범 수용소, 성폭행, 영아살해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 인권상황을 ICC에 회부하고 책임자를 제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북한은 이같은 결의안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등 평양 수뇌부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지난 9월 리수용 북한 외무상은 외교수장으로선 15년만에 유엔 총회에 직접 참석, “북한 인권 보고서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적대적 모함”이라며 강력히 항의했다. 북한은 이와함께 지난 10월 유엔 회원국을 대상으로 북한 인권 소개 행사를 개최하는 한편 마루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방북 허용을 시사하는 등 유화책도 병행했다. 최근 북한에 억류됐던 케네스 배씨 등 미국인 2명을 전격 석방한 것도 미국을 향한 유화제스처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유엔 인권 결의안대로 당장 북한 인권 이슈가 ICC에 회부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의안이 회원국을 상대로 구속력을 갖는 것도 아니고, 유엔 안보리에서 비토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인권 이슈를 앞세운 대북 압박은 한층 더 거세질 전망이다.
북한 당국은 반발 수위를 놓고 고민할 전망이다. 그동안 북한은 인권 문제 제기를 미국이 주도한 부당한 내정 간섭이자 체제 전복 음모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날 유엔 회의장에서 북한 대표도 이와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인권 문제를 전면화하고 대결국면으로 치달을 경우 최근 추구해온 고립 탈피 행보에도 막대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강력한 반발은 불가피하지만 한반도 주변국과의 정면대결까지는 갈 수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는 이유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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