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고장이 발생했을 때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시스템을 설계할 때는 최악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유스케이스(use-case)를 예상하고 상세한 대응 매뉴얼을 필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배웠다. 사람이 잘못 조작하더라도 시스템이 반응하지 않는 풀프루프(fool-proof), 고장이 발생하더라도 위험으로 연결되지 않는 안전장치 등을 설치하는 페일세이프(fail-safe) 등도 필수 설계 요건이다. 리허설이란 단어는 연극에서만 쓰이지 않는다. 대응 매뉴얼이 아무리 문서상으로 완벽해도 반복적 교육과 훈련, 리허설을 통해 담당자들은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매뉴얼에 따른 판단과 대응절차를 본능적으로 수행할 정도로 체화돼야 한다는 것은 시스템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철학이다.
재난ㆍ재해와 안전사고 저감을 위한 국가차원의 기술개발과 투자방향을 제시한 제2차 재난 및 안전관리기술개발종합계획 시행계획에 따르면 2014년 정부의 재난 안전 관련 연구개발 총 투자는 2785억원으로 국가 전체 연구개발 투자 17조7000억원의 1.57% 수준이라고 한다. 재난 재해 관리 관련 예산을 살펴보면 재난 대피기술 및 이재민 구호기술 개발에 3억8500만원, 협업행정기반의 선진형 재난관리체계 구축에 7000만원의 예산이 포함돼 있고, 산ㆍ학ㆍ연ㆍ정부 협력체계 구축, 정책수립 및 기술평가 전문가 양성, 재난관리 전문 인력 수요창출을 위한 연구개발 예산은 0원이다. 첨단과학기술, 기초연구는 국가의 경제성장과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대형 재난과 재해 발생 가능성이 있는 인간-기계시스템 안전 연구는 분명 정부가 이끌고 책임져야 할 과학기술 분야의 하나로, 원활한 재난 재해에서 인명 구조의 가치가 얼마나 커다란지는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정부는 재난 상황별 매뉴얼을 전면 개편한다고 한다. 행정차원이 아니라 시스템 차원에서의 과학적ㆍ공학적 관점으로 산ㆍ학ㆍ연ㆍ정부가 모두 모여 예측 가능한 모든 상황을 발굴하고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교육ㆍ훈련과 리허설을 실시해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매뉴얼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 더 이상 후진국형 인재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사고를 통해 안전을 배우지 마라(Don't learn safety by accident)'는 너무나 식상한 슬로건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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